국제 정치·사회

반복되는 美-멕시코 '국경비극'...트럼프 反이민정책에 비난여론

강 건너다 숨진 엘살바도르 부녀 사진에

국제사회 충격..."비인도적 이민정책 결과"

지난해 국경지역 사망 이민자 283명 달해

美의 멕시코 압박에 경비 강화되며 더 악화

불법이민자 아동수용소 열악한 환경도 드러나

여론 악화에 세관국경보호국 국장대행 사의

지난 24일(현지시간) 멕시코 접경지역인 마타모로스 강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엘살바도르 국적의 어린이 발레리아가 아빠 마르티네스의 셔츠 안에서 한쪽 팔로 아빠의 목을 감싼 채 엎드려 있다. /타마울리파스=로이터연합뉴스지난 24일(현지시간) 멕시코 접경지역인 마타모로스 강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엘살바도르 국적의 어린이 발레리아가 아빠 마르티네스의 셔츠 안에서 한쪽 팔로 아빠의 목을 감싼 채 엎드려 있다. /타마울리파스=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5일(현지시간) 외신들은 한 남성과 아이가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역의 리오그란데 강가에서 나란히 숨진 채 엎드려 있는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사진 속 아이는 아빠의 가슴까지 말려 올라간 검은 티셔츠에 몸을 넣고 한쪽 팔로 아빠의 목을 감싸고 있다. 사진 속 시신은 엘살바도르 출신의 25세 오스카르 알베르토 마르티네스 라미레스와 그의 23개월 된 딸 발레리아. 앞서 23일 리오그란데강에 도착한 마르티네스는 먼저 딸을 맞은 편 강가에 건네 두고 다시 아내를 데리러 갔지만, 그 사이 놀란 딸이 물에 뛰어들며 이를 구하려던 마르티네스가 딸과 함께 급류에 휩싸이며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녀의 시신은 이튿날 아침 사고지점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멕시코 마타모로스의 강가에서 발견됐다.

멕시코 국경에서 강을 헤엄쳐 미국으로 가려다 익사한 중남미 이민자 부녀의 모습이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4년 전 터키 남서부 해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꼬마 알란 쿠르디를 상기시키는 이 사진은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에 대한 논란을 키우고 있다.


국제사회는 미국의 반이민정책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미국이 (이민자를) 거부할수록 목숨을 잃는 사람이 는다”고 말했다. 미국 민주당의 코리 부커 상원의원(뉴저지)도 “이는 트럼프의 비인도적인 이민정책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멕시코 접경지역인 마타모로스 강가에서 엘살바도르 출신의 타니아 바네사 아발로스(가운데 왼쪽)가 지난 23일(현지시간) 멕시코 당국자에게 남편과 2살난 딸이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다 급류에 휩쓸려 숨진 정황을 설명하고 있다. 강을 건너 미국으로 가려던 이들의 시신은 이튿날 아침 휩쓸려간 곳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딸이 아빠의 셔츠에 몸을 넣고 팔로 아빠의 목을 감싼 모습으로 발견됐다.     /마타모로스=AP연합뉴스멕시코 접경지역인 마타모로스 강가에서 엘살바도르 출신의 타니아 바네사 아발로스(가운데 왼쪽)가 지난 23일(현지시간) 멕시코 당국자에게 남편과 2살난 딸이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다 급류에 휩쓸려 숨진 정황을 설명하고 있다. 강을 건너 미국으로 가려던 이들의 시신은 이튿날 아침 휩쓸려간 곳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딸이 아빠의 셔츠에 몸을 넣고 팔로 아빠의 목을 감싼 모습으로 발견됐다. /마타모로스=AP연합뉴스


실제 엘살바도르·과테말라·온두라스 등 중미국가에서 출발해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넘으려는 불법이민자들 사이에서 같은 비극이 이어지며 지난해 국경 사막·강에서 사망한 이민자가 283명에 달한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전날인 24일에도 CNN·NBC 방송에 따르면 젊은 여성과 유아 1명, 영아 2명 등 4명이 또 리오그란데강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달고 카운티 경찰은 국경순찰대가 시신 4구를 발견했으며 외상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며, 일가족으로 보이는 4명이 혹독한 환경에 노출되면서 탈수와 열 노출 등으로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망자가 발견된 곳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경장벽을 건설하겠다고 공약한 지역과 가깝다. 세관국경보호국(CBP)은 리오그란데강 협곡이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는 불법 이민자 중 40% 이상이 체포되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이 가운데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암로) 멕시코 대통령은 25일 북부 미국 국경 지역에서 이민자들을 체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례브리핑에서 국가방위군의 이민자 체포 과정에 과도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텔레비사 방송 등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최근 멕시코는 자국 영토를 거쳐 미국으로 향하는 이민자들의 수를 줄이기 위해 남부 국경 지역에 6,500명의 국가방위군을 배치한 데 이어 북부 국경 지역에 1만5,000명을 추가로 파견했다. 과거 멕시코는 자국을 거쳐 미국 국경을 넘는 이민자들을 사실상 단속하지 않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부과 위협 이후 강경 단속 정책으로 선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중미 출신 이민자 행렬(캐러밴)이 늘자 경유지인 멕시코를 겨냥해 관세 카드를 활용해 압박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멕시코가 미국으로 향하는 중미 이민자를 막지 않으면 모든 멕시코산 수입품에 5%부터 시작해 최대 25%까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이후 멕시코는 미국과 협상에 나서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남쪽 국경 전역에 국가방위군을 배치하는 등 전례 없는 조치를 취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망명 신청자가 심사 기간에 멕시코에 체류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미국과 지난 7일 합의하면서 일단 위기를 피했다. 양국은 45일 뒤에 멕시코가 취한 강경 이민 정책의 효과와 결과 등을 평가할 계획이다.

25일(현지시간) 멕시코 시우다드후아레스에서 미 텍사스주 엘파소로 불법 입국한 이주자 가족이 리오 브라보강 제방을 따라 걷는 모습을 멕시코 국가방위군 군인이 지켜보고 있다.     /시우다드후아레스=로이터연합뉴스25일(현지시간) 멕시코 시우다드후아레스에서 미 텍사스주 엘파소로 불법 입국한 이주자 가족이 리오 브라보강 제방을 따라 걷는 모습을 멕시코 국가방위군 군인이 지켜보고 있다. /시우다드후아레스=로이터연합뉴스


이날에는 또 미 언론들이 멕시코 등 중미지역에서 미국 국경을 넘어오다 적발돼 부모와 격리 수용된 불법 이민자 아동들이 몇 주간 씻지 못한 채 극도로 비위생적 환경에 노출돼 있다고 보도하면서 여론이 더 악화됐다.


AP통신과 워싱턴포스트(WP), NBC방송에 따르면 지난주 미 텍사스주 클린트와 맥컬렌에 있는 아동 구금시설을 돌아보고 온 변호사들은 아이들이 몸서리쳐지는 환경에 놓여있다고 고발했다. 클린트 수용시설에 다녀온 컬럼비아 로스쿨 이민자 인권 클리닉의 엘로라 머커지 변호사는 “내가 말을 걸어본 아이들 대부분은 국경을 넘어온 이후로 한 번도 샤워하지 못했다고 했다”면서 “3주간 씻지 못한 아이들도 수두룩했다”라고 전했다. 클린트 캠프에는 치약·비누는 물론 씻을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맥컬렌 구금시설에 다녀온 이민전문 변호사 호프 프라이도 NBC 뉴스에 “과테말라 출신 17세 엄마가 응급 제왕절개술을 받고 미숙아를 온갖 얼룩으로 오염된 보자기에 싸서 돌보는 장면을 목격했다”라고 말했다. 프라이는 “물도 치약도, 비누도 아무것도 없었다”면서 위생실태를 고발했다.

미국 텍사스주 클린트의 이민자 아동 구금시설.      /AP연합뉴스미국 텍사스주 클린트의 이민자 아동 구금시설. /AP연합뉴스


이같은 실태가 폭로되며 같은날 세관국경보호국(CBP) 국장대행이 사의를 표명했다. CNN방송 등 미 언론에 따르면 존 샌더스 CBP 국장대행은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일부는 알다시피 어제 나는 케빈 매컬리넌 장관(대행)에게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사임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반면 CBP 측은 “아이들에게 사흘에 한 번씩 샤워하도록 허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비판이 잇따르자 CBP는 클린트 수용시설에 있던 아동 300여 명을 지난 주말 사이 텍사스주 엘패소 인근 텐트시티로 이송했다. 텐트시티에서 일부는 미 보건복지부가 군 기지와 남부 텍사스 지역에 운용하는 보호시설로 옮겨졌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민당국 관리의 말을 인용해 보건복지부 보호시설에 침상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100여 명은 다시 클린트의 비위생적인 구금시설로 되돌아왔다고 전했다. 알렉스 에이자 미 보건복지부 장관은 부처 산하 보호시설에서 3,000~4,000명의 이민자 아동을 수용하고 있지만,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러 더는 아동을 보호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 연방 당국의 이민자 아동 신병 처리절차 매뉴얼대로라면 국경 구금시설에서는 72시간 이상 아동을 구금할 수 없게 돼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지적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이 2~3주씩 국경지대 구금시설에 갇혀있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전했다.

아이들이 충격적인 구금 환경에서 여기저기 떠밀리고 있지만, 워싱턴DC 의사당에 제출된 이민자 처우개선 법안은 정쟁 속에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백악관은 민주당 주도로 마련된 45억 달러(5조2,000억 원) 규모의 불법 이민자 처우개선 법안에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내비쳤다. 국경장벽 건설 등 국경 안보를 강화할 조항이 빠져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국경을 넘어오다 체포된 이민자 수는 올해 2월 7만6천 명에서 4월 10만9,000명으로 10만 명을 넘었고 5월에는 14만4,000명으로 불어났다.

이 가운데 27일 미 일간 LA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서부에서 활동하는 변호사·의사·통역사 등 수십 명이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의 비인도적 환경에서 이민자 아동을 구금하지 못하도록 금지명령을 내려달라고 법원에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캘리포니아주 연방지방법원에 제출된 소장에서 변호사들은 텍사스주 국경지대 구금시설에 수용된 이민자 아동들이 개탄스러운 상황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이는 망명을 요구하는 아동 수용에 관한 법적 기준을 정한 1997년 플로레스 협약을 위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고들은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이 이민자 아동에 대한 석방절차를 밟아 이들을 부모와 친척에게 인계하고 구금 기간에 최소한의 위생용품과 생필품을 제공하도록 법원이 강제 집행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재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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