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이 북한 땅을 밟고 남북미 정상 3자 간의 깜짝 만남이 이뤄졌다.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판문점 방문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기꺼이 ‘조연’을 자처하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만남을 주선했다.
‘분단의 상징’ 판문점에는 이날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오전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후12시15분 김 위원장의 ‘집사’로 불리는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의 모습이 포착됐다. 이어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미국 측 관계자들도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판문점 남측 지역 ‘자유의집’을 집중적으로 둘러봤다. 이날 사실상 3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장소였다.
양 정상이 어떤 형식으로 만날지는 사전에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남북미 정상이 함께 만날 것이냐, 북미 정상만 만날 것이냐를 두고도 예측이 분분했다. 청와대는 두 정상이 판문점으로 떠나기 직전까지도 구체적인 동선을 밝히지 않았다.
오후3시44분 자유의집 문을 열고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했다. 그는 성큼성큼 군사분계선으로 걸어갔다. 지난해 4월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난 바로 그곳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맞이하는 가운데 곧이어 김 위원장이 북측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북미 정상은 군사분계선 위에서 악수를 나눴다. 김 위원장은 “여기서 한 발짝 넘으면 사상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는 미국 대통령”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양 정상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잠시 북측으로 넘어갔고 몇 발자국을 더 걸어갔다. 이어 기념사진까지 촬영한 북미 정상은 악수를 나눈 뒤 다시 군사분계선 남측으로 넘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굉장히 긍정적인 일들을 이뤄냈다. 아주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고 우리는 처음 회담 때부터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자유의집 앞에서 양 정상은 취재진의 질문에도 답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 미국 기자가 ‘김 위원장을 미국으로 초청할 의사가 있느냐’고 묻자 “곧바로 그를 백악관으로 초청하려고 한다”는 답을 하기도 했다.
북미 정상이 기자들과 얘기를 나누는 사이 문 대통령이 자유의집에서 나와 김 위원장에게 다가갔다. 사상 최초의 남북미 3자 간의 만남이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만나 반갑게 악수한 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환담했다. 남북 간의 최근 냉랭했던 분위기를 돌이켜보면 이 역시 파격적인 장면이었다. 이어 남북미 정상이 자유의집으로 이동했고 문 대통령이 빠진 채 북미 정상이 예정에 없던 53분간의 깜짝 회담을 가졌다. 문 대통령은 북미회담을 위해 별도의 장소에서 기다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회담장에서 “일부에서는 미리 사전에 합의된 만남이 아닌가 이런 말들도 하던데, 사실 나는 어제 아침에 (트럼프) 대통령님께서 그런 의향을 표시하신 것을 보고 깜짝 놀랐고 정식으로 오늘 여기서 만날 것을 제안하신 말씀을 오후 늦은 시간에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쁜 과거를 연상하게 하는 이런 자리에서 오랜 적대적 관계였던 우리 두 나라가 평화의 악수를 하는 것 자체가 어제와 달라진 오늘을 표현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더 좋게 우리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만남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제가 SNS로 메시지를 보냈을 때, 사실 이 자리까지 오시지 않았으면 제가 굉장히 좀 민망한 모습이 됐을 텐데 이렇게 나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전날 밤 판문점을 극비리에 찾아 김 위원장을 만나고 싶다는 미국 측의 공식 문서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군사분계선을 넘은 소회와 관련해서는 “제가 그 선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을 큰 영광이라고 생각하며 거기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실 제가 할 수 있을지 생각하지 못했지만 정말 좋은 느낌이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