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수입하는 제품을 보면 한일 무역관계가 잘 나타난다. 지난해 주요 수입품은 반도체제조용장비(52억달러)에 이어 집적회로반도체(24억달러), 기초유분(19억달러), 기타정밀화학원료(19억달러), 개별소자반도체(12억달러), 자동차부품(10억달러), 실리콘웨이퍼(9억달러), 광학기기부품(9억달러) 등이다. 하나같이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와 석유화학·자동차·전자기기와 관련된 제품이다. 정부가 수십 년째 연구개발(R&D) 정책으로 일본으로부터 기술독립을 지원하고 있지만 무역 역조와 산업 의존도는 더 커지고 있다. 일본과 교역을 한 지 50년 되던 2015년 대일 무역적자 규모는 203억달러로 2003년(190억달러)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가 지난해 다시 241억달러로 불어났다. 이는 기타정밀화학원료(29.3%)와 실리콘웨이퍼(51%), 반도체제조용장비(8.1%) 등 국내 산업이 돌아가는 데 필수 기기와 부품소재의 수입액이 늘어나면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일본이 외교·정치에 이어 산업까지 한국과 대립각을 세울 경우 피해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산업계에서는 최악의 경우 일본이 보복을 언급한 반도체 분야와 함께 국내 양대 산업인 자동차마저 공장을 멈출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국내 완성차 업체인 쌍용자동차는 티볼리와 코란도 등 주요 모델에 일본 자동차부품사 아이신의 변속기를 수입해 장착하고 있다. 만에 하나 변속기에 대한 수출규제가 벌어지면 연 14만대를 생산하는 쌍용차는 벼랑 끝에 몰린다. 쌍용차의 엔진은 일본 아이신의 변속기에 맞춰져 있고 차량 전자장비와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단시간에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 친환경 자동차 기술을 가진 현대·기아차를 제외하면 국내 차 회사들은 일본의 기술 없이는 하이브리드차를 만들 수도 없다.
미래 산업도 마찬가지다. 자율주행 자동차 등 모빌리티에 삽입되는 필수장비인 초정밀 카메라에 들어가는 광학렌즈 원천기술들도 일본이 가지고 있다. 로봇의 경우 일본의 기술력 없이는 단 한 발자국도 못 걷는다. 머리(제어기)와 관절(액추에이터) 등의 기술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산을 대체할 수 있지만 한두 해 안에는 어렵다”며 “핵심 부품이 없으면 당장 생산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