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어떻게 지내십니까] "지금 한국경제는 가뭄기....분배·복지보다 투자 활성화 나설 때"

엄길청 경제평론가·경기대 교수

우리 경제 성장 리듬 회복하면 '복지의 잔디' 심을 수 있어

넘쳐나는 유동성 생산적인 방향으로 유인하는 정책 필요

기업은 4차산업혁명 시대 맞아 핵심 원천기술 확보해야

엄길청 경제평론가는 지금 세계 경제가 4차 산업 제조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런 시대에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원천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욱기자엄길청 경제평론가는 지금 세계 경제가 4차 산업 제조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런 시대에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원천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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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경제평론가는 지난 1990년대 초부터 20여년간 구수한 입담으로 청취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방송을 통해 흘러나오는 그의 생활경제· 증권정보 브리핑은 귀를 기울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리 일상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경제 이슈와 흐름을 명쾌하게 짚어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의 말에는 국제상사·한화경제연구원·씽크풀 등 증권시장과 기업현장에서 일하며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체험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금은 방송 일에서 벗어나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그를 최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들어봤다.

-이전에는 방송에서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뜸하다.


△1988년 증권사에 애널리스트로 들어갔는데 우연한 기회에 CBS라디오와 연이 닿아 증권정보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됐다. 그걸 5년이나 했다. 이를 계기로 이후 ‘손에 잡히는 경제’와 ‘시선집중(MBC)’ ‘엄길청의 성공시대(KBS)’ ‘EBS초대석’ 등을 진행하며 시청자들과 만났다. 1998년 첫 전파를 탄 시선집중의 경우 초대 MC를 맡았는데 2000년 손석희 앵커에게 바통을 넘겨줬다. 이후 2015년까지 진행자·게스트로 계속 방송에 출연했다. 하지만 2016년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방송 등 대외활동을 자제하는 게 좋겠다는 학교 방침에 따라 그만두게 됐다. 28년 정도 방송생활을 한 셈이다.

-학생들 가르친 지는 얼마나 됐나.

△2002년 경기대에서 불러줘 학생들과 만나게 됐다. 전공강의는 비즈니스 스쿨이다. 재무관리·투자분석·자산관리 등 경영학 분야다. 어느덧 올해 말이면 정년퇴임이다. 정든 학교와 학생들을 떠나야 할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내년부터는 시장으로 복귀할 것 같다. 이전에 기관분석가로 일한 경험이 있는 만큼 이를 살려 독립투자분석가(IFA)로 활동할 계획이다. 앞으로는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하게 시장을 분석해볼 생각이다.



-요즘 세계 경제의 판이 흔들리고 있다.

△그동안 세계 경제는 금융을 중심으로 한 인위적 수요창출로 지탱해왔다. 특히 미국은 제조는 중국에 맡기고 금융 수수료로 먹고사는 경제로 버티다가 흔들리면 다시 통화를 찍어 현상 유지하는 악순환을 지속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보듯이 금융으로 부풀려진 소비로는 경제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동안 소매금융이 커지면서 소비의 질만 떨어졌다. 지금 글로벌 경제는 여기에서 벗어나려는 패러다임 전환기라고 봐야 한다. 미중 무역전쟁은 그런 과정의 일환이다. 2013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이미 사인을 줬다. 저가생산 프레임을 멈춰야 한다고. 금융 중심의 미국을 따라가던 독일도 이래서는 안 된다는 자각으로 그때부터 ‘생산하는 나라로 돌아가자’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 정책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를 낙관적으로 보시는데.

△지금 세계 경제는 큰 틀에서 신제조 리그가 만들어지고 있다. ‘선진 4차 산업 제조선단’이라고 할 수 있다. 맨 위층에는 소프트웨어(지식)를 보유한 미국, 오퍼레이션(기술)을 가진 독일과 함께 한국이 자리 잡을 것이다. 우리는 4차 산업의 필수 머티어리얼(물질)인 반도체·2차전지 강국이기 때문이다. 희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그동안 지속된 금융 가수요에 의한 경제 메커니즘은 조만간 종료될 가능성이 높다. 그 후에는 선진 4차 산업 제조선단이 주도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아직 출발 전이라 세계 경제가 혼란 속에 주춤하고 있다고 본다. 패러다임 전환 조짐은 올해 말께 나타나고 내년 중반부터 궤도에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한국 경제는 힘든 게 사실이다. 난관을 헤쳐나갈 방안이 있을까.

△정부와 대통령은 우리가 오랫동안 간직해온 ‘꾸준히 성장하는 국가’라는 국민 공통의 비전 회복 문제로 돌아와야 한다. 지금 한국이 당면한 상황은 천기로 치자면 가뭄이 닥쳐온다는 것이다. 새로운 물길을 여는 것은 정부의 역사적 책무다. 경제성장을 회복시키기 위한 기본적인 정책은 누가 뭐래도 투자와 소비 활성화라고 할 수 있다. 고용과 분배는 이 기초 위에서 다시 그리는 그림이다.

-지금은 분배보다 성장에 방점을 찍어야 할 때라는 의미인데.


△고단한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정책은 참으로 좋은 길이다. 그러나 지금 예쁘게 보기 좋은 잔디를 심었는데 저 산 너머에서 가뭄이 닥치고 있다면 그 잔디는 끝내 말라죽게 된다. 다시 우리가 성장의 리듬을 회복하게 되면 그때 복지의 잔디를 심을 수 있다. 현재 저금리로 시중자금이 풍부하고 주요 기업의 내부 유보금도 많은 상황이다. 문제는 이 돈이 투자될 수 있는 산업정책의 공간이 없다는 점이다. 개인에게도 주택투자나 가치소비의 공간을 주지 않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다. 지금 개인들에게 투자할 여력이 있다면 대상이 부동산이라도 이를 억제할 필요가 없다. 특히 기업에 투자의향이 있다면 그게 저고용 구조라 하더라도 이를 북돋아야 한다. 저고용 설비투자 시대가 왔는데 고용 부담을 기업들에 강요하는 것은 맞지 않다. 정부는 기업 투자를 도와주고 이익이 자연스럽게 사회적 복지로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지금 세상은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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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동안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사업확장 방식을 보면 그들 사업의 오리진(원천기술·Origin)은 거의 없는 편이었다. 구글이 유튜브를 사들이고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인수하는 것이 이를 대변한다. 최근 페이스북이 자체 암호화폐를 내부에서 만드는 것을 보면 그들도 이제 자기 사업의 오리진을 찾는 모양이다. 기업에 오리진은 중요하다. 원천기술이 없는 기업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잘 성장하다가도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오리진을 가진 삼성·LG·현대차 등은 그렇지 않다. 앞으로 세계 경제는 미국을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신교역의 새판이 짜일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 흐름을 같이 타려면 우리만의 핵심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길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대기업이 열어야 한다. 여기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가급적 일본과는 직접 경쟁하지 않는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길게 보면 우리와 일본은 서구에 대항하는 아시아 대표 파트너로서 국가 간 컬래버(협력)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요즘 경제가 흔들리면서 투자환경도 여의치 않다.

△앞으로도 저금리·저물가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주식·부동산 등 재테크 환경도 나아질 것이다. 지금은 패러다임 전환의 과도기지만 점차 안정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수요는 아이디어나 시스템에서 온다. 지식으로 사업하는 기업, 글로벌 영업활동이 많은 업체, 그리고 ‘선진 4차 산업 제조선단’을 이끄는 나라들의 외화자산(통화)에 투자하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모든 투자가 그렇듯이 3년 이상 내다보고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장 불안정이 해소될 시기를 내년 중반쯤으로 본다면 지금이 투자 타이밍의 적기가 될 수 있다.

-다가올 변화에 가계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

△세계 부자들의 삶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거주지와 일하는 곳이 20분 내 거리다. 낭비적 요인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또 형제자매들도 가깝게 살면서 직업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 모여 살면서 서로 돕고 기회를 공유하는 경향이 짙다. 산업이 고도화될수록 사람과 자원이 도심에 집중된다. 이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가족연합처럼 친밀한 관계 속에 근거리 생활을 도모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은퇴 후에도 투자공부와 실제 투자를 하는 게 좋다고 하셨는데.

△무조건 현재의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투자에 관해 힘들여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물론 자산관리의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지만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의 길을 제시해준다는 데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투자의 세계는 남녀나 나이를 따지지 않으며 혼자서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영역이다. 부담되지 않는 자금 규모로 다양한 투자활동을 하는 것은 은퇴 후에도 지적인 활기를 유지하는 가장 좋은 대안이다. 투자의 세계에는 늦었다는 표현이 없다.

-부산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신데.

△부산은 고향이나 다름없다. 충북 단양 출신이지만 청소년 시절 대부분을 부산에서 보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곳이 부산이라고 생각한다. 부산은 지리적으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발전이 더딘 것 같아 마음이 아픈 게 사실이다. 앞으로도 한반도 남쪽보다는 북쪽 방향으로 관심이 쏠릴 가능성이 높아 걱정이다. 이럴 때일수록 도시연합을 통해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게 필요하다. 울산·창원·거제 등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



He is…

1955년 충북 단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부산으로 이사했다. 부산 동성중과 배정고를 거쳐 1977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한양대에서 금융증권, 세종대에서 재무관리전공으로 각각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제그룹 회장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증권업계로 옮겨 동서증권경제연구소·한화경제연구원 등에서 일했다. 2000년 6월부터 1년여간 씽크풀 대표를 맡기도 했다. 1994년에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하는 등 2015년까지 방송활동도 왕성하게 했다. 2002년부터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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