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전송기기 제조업체 A사에서 실무자로 일하는 김영택(가명)씨는 최근 들어 일본 관련 신문기사를 찾아보는 일이 잦아졌다. 일본 정부가 지난 4일부터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대상에서 한국을 제외하기 위해 의견 청취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다. 현재 A사는 제조기기에 들어가는 중앙처리장치(CPU)를 100% 일본에서 조달하고 있다. 김씨는 “CPU 재고가 6개월 분량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만약 해당 CPU의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다른 거래처를 구하기가 마땅치 않다”며 “설사 다른 업체의 CPU를 공급받는다 해도 제조 라인을 전부 다시 뜯어고쳐야 한다”며 난색을 나타냈다.
A사처럼 일본과 밀접한 거래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소기업 10곳 중 6곳이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가 지속될 경우 6개월 이상 감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두 곳 중 한 곳꼴로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나 한일 정부가 지금이라도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9일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재 등 수출 제한에 대한 중소기업 의견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59%가 일본의 수출규제가 이어지면 6개월 이상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3개월을 버티기 힘들다는 답변도 28.9%에 달했다. 이번 조사는 반도체·영상기기·화학·무선통신장비 제조업체 269개사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문제는 뾰족한 대응책이 없는 중소기업이 전체의 46.8%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는 점이다. 국산화(21.6%), 수입국 다변화(18.2%)에 나선다는 곳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소재 거래처 다변화에 1년 이상 소요된다는 곳이 42%에 달해 일본을 대체할 판로를 개척하는 데에도 시일이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통상규제를 계기로 중소기업인 사이에서는 ‘소재 국산화’에 대한 수요가 커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통상 상황에 필요한 정부의 지원책으로 ‘소재 국산화를 위한 연구개발(R&D) 및 설비투자 자금지원’을 꼽은 곳이 63.9%(복수 응답)로 가장 높았다. 이어 수입국 다변화를 위한 수입절차 개선과 긴급경영안정자금 지원 등이 각각 45.4%와 20.1%의 응답률을 기록했다.
또한 전체의 53.9%가 ‘외교적 협상을 통한 원만한 해결’을 원해 ‘국제무역기구(WTO) 제소 등 국제법 대응(34.6%)’을 원하는 곳보다 더 많았다. 국제관계와 별개로 우리 기업과 일본 기업 사이의 파트너십이 활발히 이뤄지는 만큼 ‘맞대응’보다 ‘원만한 해법’을 원하는 기업인들이 더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중기중앙회도 다음달 일본을 방문해 현지 정치인들과 대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오는 8월 초 중소기업사절단을 구성해 일본을 방문, 지한파로 알려진 니카이 도시히로 일본 자민당 간사장 및 경제산업성 대신과의 간담회를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