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16일부터 시행된다. 다만 괴롭힘의 개념이 모호하고 처벌 규정도 따로 없어 정착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개정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한다. 직접적인 처벌 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상시 노동자 10인 이상 사업장은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등의 내용을 포함하도록 의무화했다. 취업규칙에는 금지 대상 괴롭힘 행위, 예방 교육, 사건 처리 절차, 피해자 보호 조치, 가해자 제재, 재발 방지 조치 등이 기재돼야 한다. 추가로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에 대한 징계 규정을 신설할 경우 노동 조건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해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다는 신고를 접수하거나 사건을 인지했을 경우 지체 없이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해 유급휴가 명령과 같은 보호 조치를 해야 하며, 괴롭힘이 사실로 확인되면 가해자에 대해선 징계와 근무 장소 변경과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나 피해자에게 해고를 포함한 불이익을 주면 안 되며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 부과 대상이다. 직장 내 괴롭힘에 따른 업무상 스트레스가 원인인 질병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개정 산업재해보상보험법도 16일부터 시행된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어떤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초기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려면 직장 내 지위를 포함해 관계상 우위를 이용한 행위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관계상 우위는 나이, 학벌, 성별, 출신, 근속연수, 전문지식, 노조 가입 여부, 정규직 여부 등 다양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또 문제의 행위가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야 하며 이 밖에도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노동부는 지난 2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담은 매뉴얼을 내놨다. 매뉴얼에 따르면 회사 임원이 육아휴직 후 복직한 직원에게 기존 업무와 다른 업무를 주고 다른 직원들에게 그를 따돌리라는 지시를 해 피해자가 우울증을 앓게 만들었다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은 지시로 정신적 피해를 줬기 때문이다.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술자리를 반복적으로 요구하며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한 경우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의류회사 디자인팀장이 신상품 발표 행사를 앞두고 팀원에게 디자인 보고를 시킨 후 미흡하다며 지속해서 보완을 지시해 팀원이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해도 직장 내 괴롭힘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팀장의 지시가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섰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의 기준은 구체적인 사정을 최대한 참작해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제시하기는 어렵다는 게 노동부의 설명이다. 기업별로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징계를 위한 취업규칙을 만들고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판단을 통해 기업 사정에 맞는 기준을 정립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대기업은 대부분 직장 내 괴롭힘 예방·징계를 취업규칙에 반영하는 등 준비를 마쳤으나 중소기업의 약 20%는 아직 계획도 세우지 못한 상태다. /정민수 인턴기자 minsooje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