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동십자각]일본 보복을 히든챔피언 육성 계기로

맹준호 성장기업부 차장




한중일 3국의 동북아 국제분업체제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 정보기술(IT) 분야의 리더십을 상징하는 애플 아이폰도 동북아 분업체제가 없으면 탄생하지 못했다. 스티브 잡스라는 천재의 아이디어와 실리콘밸리 최고 엔지니어들의 기술력이 아이폰의 바탕이지만 일본의 초소형·고기능 전자부품, 한국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중국 여공들의 헌신적 노동이 없었다면 아이폰 역시 터무니없는 가격에 대량생산도 불가능한 ‘비운의 작품’으로 끝났을 것이다.

이 같은 한중일 국제분업 시스템은 누가 시켜서 성립된 게 아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되고자 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값싼 노동력을 가진 중국은 무엇이든 완성품을 조립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 수출하고 싶어 했는데 그에 필요한 중간재를 맡아줄 최적의 파트너가 바로 한국이었다. 그리고 일본은 이미 압도적 경쟁력을 가진 소재·부품과 산업 각 분야의 원천기술을 한국에 파는 구조였다. 분업의 정점에 있는 일본은 한국에 기술과 소재를 팔고, 한국은 그걸 받아 만든 중간재를 중국에 넘기며, 중국은 완제품을 생산한다. 이렇게 만든 제품은 세계의 어떤 시장에서도 최강의 ‘가성비’를 갖게 됐다.


이런 구조 덕분에 3국은 ‘산업 내 무역’이 활발하다. 같거나 관련된 업종 내에서 서로 독점적인 고객 관계를 형성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 지난해 일본의 반도체 제조장비 업계는 한국 반도체 회사에 52억4,200만달러를, 반도체장비용 부품 업계는 9억5,000만달러를 수출했다. 결론적으로 중국 제조업이 잘되면 한국도 좋고, 한국이 잘되면 일본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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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산업소재 수출규제는 이러한 국제분업의 판을 깨 한국에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독점적 고객에게 물건을 팔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국의 산업생산에 타격을 가해 중국을 비롯한 세계 고객의 신뢰를 잃게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일본도 피해를 본다. 가뜩이나 올해 경제가 더 좋지 않다. 올 1~5월 무역적자가 지난해 전체 규모를 넘어섰고 한국에 대한 반도체 제조장비 수출은 지난해 대비 39% 줄었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하면 한국에 더 큰 피해가 누적되고 결국 먼저 백기를 들 것이라고 일본은 판단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싸움은 ‘보통국가화’라는 일본 우익의 최우선 국정목표를 위한 여론 결집에 도움이 된다. 경제적 손해보다 정치적 이익이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면 한국도 부품·소재 경쟁력을 하루빨리 키워야 한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소재·부품·기술 대일 의존 탈피’를 부르짖었지만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선진국은 부품·소재 생태계를 바탕으로 대기업이 태어났다. 그러나 한국은 압축성장을 위해 대기업과 완성품 위주로 경제개발을 이뤘다. 그리고 대기업이 이끄는 성장에 취해 소재·부품 히든챔피언 육성을 미루고 미루다 여기까지 왔다. 일본의 보복을 각성의 계기로 삼아 장기적인 산업생태계 혁신에 착수해야 한다.


맹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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