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책꽂이-386 세대유감] '不老세대'가 헬조선 만들었다

■김정훈 외 2인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정의 부르짖던 민주화 운동 주역

대학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 입사

사교육 광풍·부동산 투기·양극화 등

기득권 편입 후 병폐 조장 꼬집어

386 발자취 비판적으로 돌아보고

더 나은 세상 위한 고민·해법 제시

2015A22






다세대 빌라와 단독 주택이 섞여 있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일대의 부동산 시장. /서울경제DB다세대 빌라와 단독 주택이 섞여 있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일대의 부동산 시장. /서울경제DB


영화 ‘1987’의 스틸컷.영화 ‘1987’의 스틸컷.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의 저녁 풍경. /연합뉴스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의 저녁 풍경. /연합뉴스


‘운동한 기간보다/ 운동을 이야기하는 기간이 더 긴 사람이 있다/(중략)/ 그들에게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운동/ 현재가 없는 운동을 현재로 끌어오는/ 그들의 공허함’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인 시절 발표한 시 ‘운동의 추억’의 일부다. 1998년 쓰인 이 시는 학생운동으로 획득한 훈장 하나만 믿고 알량한 기득권을 휘두르는 ‘386 세대’를 비판한다. 386 세대란 1960년대생으로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30대의 나이에 사회의 주역이 된 무리를 일컫는다. 이들은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앞세대가 쓸쓸히 퇴장한 자리를 넘겨받은 뒤 50대에 이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막강한 사회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도 의원의 시를 인용하며 논의를 시작하는 ‘386 세대유감’은 민주화 운동을 거쳐 사회 기득권 세력으로 편입한 이들 무리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더듬는다. 김정훈 CBS 기자, 심나리 서울대 박사과정 연구자, 김항기 국회 비서관 등 30~40대 젊은 저자들이 공동 집필했다.


우선 이 책은 386 세대가 누린 ‘시대적 행운’을 실증적으로 조명한다. 이들 세대가 20대 중후반이던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은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학점관리를 안 해도, 자격증이 없어도, 어학연수를 다녀오지 않아도 대학을 나온 386은 가고 싶은 회사를 골라 갈 수 있었다. 대학 졸업장이 곧 대기업으로 향하는 ‘프리패스 입장권’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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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은 이 대목에서 1965년생과 1975년생, 1985년생이 각각 따낸 대학 졸업장의 가치를 수치로 따져본다. 각 세대가 ‘대학 졸업 후 7년 동안 얻은 연평균 소득’을 ‘4년 동안 투자한 등록금’으로 나눈 결과 1965년생은 22.3, 1975년생은 19.7, 1985년생은 12.3이 나왔다. 대학 진학률이 30% 안팎에 불과했던 1965년생의 ‘등록금 투자자본수익률’이 너도나도 대학에 가는 1985년생보다 81%나 높게 나온 것이다. 저자들은 이렇게 빛나는 졸업장을 들고 정치권·법조계·재계 등으로 진출한 386이 ‘불로(不老) 세대’처럼 초장기 집권을 이어오고 있다고 꼬집는다.

물론 이 책은 19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를 꽃피운 386 세대의 공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목숨을 건 그들의 반(反)독재 투쟁이 없었다면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훨씬 늦춰졌을 것이다. 문제는 386이 ‘혁명적 투사’에서 ‘사회 기득권’으로 옷을 갈아입고 난 이후 지난 20여년 동안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 부동산 투기 열풍, 점점 심해지는 양극화 등 각종 병폐가 쏟아졌다는 점이다. 사회의 진보와 평등을 부르짖었던 그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획득한 뒤에 오히려 정의와는 한참 거리가 먼 사회 문제들이 생겨난 것은 지독한 아이러니다. 책의 부제가 가리키듯 저자들은 386의 암묵적 방조와 가담, 미필적 고의 탓에 대한민국이 오늘날 ‘헬조선’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민주화 훈장을 달고 수십 년 동안 출세 가도를 달려온 386의 왜곡된 자화상을 꼬집는 이 책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나름의 해법도 제시한다.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 적당한 거주지에 살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 등 헌법이 규정한 기본권이 실제로 구현될 수 있도록 힘과 권력을 지닌 386이 노력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또 386은 20대가 사회적 모순에 눈 감는다고 손가락질하는 대신 이들이 왜 ‘스펙 쌓기’에 몰두하고 대기업 정규직 취직에 열을 올리는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진단’에 비해 ‘해법’은 다소 뻔하게 다가올 수 있으나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한 세대의 공과를 치밀하게 논증한 것만으로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도 의원의 시를 비롯해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 프리드리히 니체의 격언 등 다양한 방면에 걸친 인용구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16쪽에 달하는 해제를 쓴 경제학자 우석훈은 ‘영어교육을 위해 자녀들의 혀 수술을 시키고, 기러기 아빠를 낳은 조기유학 풍토가 유행하게 된 것도 386이 부모가 되던 시기의 일’이라며 ‘386에 대한 본격적인 견제의 시작이 바로 이 책이 갖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1만6,000원.

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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