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국 때리기’를 불사하며 사활을 걸고 있는 참의원 선거를 하루 앞둔 20일 도쿄 번화가인 아키하바라에서 마지막 선거운동에 나선다. 아키하바라는 지난 2017년 도쿄도의회 선거전 당시 아베 총리가 자신에게 야유하는 유권자들에게 비난을 퍼부었다가 선거에 참패한 트라우마를 안겨준 곳이다. 그러나 동시에 자민당이 민주당에서 정권을 탈환한 2012년 중의원 선거 때 아베 총리가 마지막으로 유세를 했던 곳이라는 상징성이 있어 이번에도 유세 장소로 포기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참의원 선거는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을 비롯한 여권이 과반수를 확보하며 무난히 승리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아베 총리는 기세를 몰아 개헌 추진과 정권 구심력 유지를 위해 이번 선거에서 교묘하게 활용한 ‘한국 때리기’ 카드를 계속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일본 주요 언론들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민당과 공명당 연립여당은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무난히 과반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국회의 상원인 참의원 의원의 임기는 6년이며, 선거는 3년에 한 번씩 절반 의석을 대상으로 실시된다. 여권은 선거의 승패 기준으로 선거 대상 의석의 절반 혹은 전체 참의원 의석의 절반을 내걸고 있는데, 두 기준 모두 여권의 과반 확보가 유력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이 53석에서 최대 68석,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10~15석을 얻을 것으로 내다봤다. 두 정당을 합친 여권이 63~83석을 얻으며 이번 선거 대상인 124석의 과반을 무난히 확보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번 선거의 승패를 가늠하는 또 다른 기준은 여권 의석에 보수 야당인 ‘일본 유신의 회’와 개헌에 우호적인 무소속 의원들을 합한 ‘개헌 세력’의 의석수가 전체 의석의 3분의 2 이상인 개헌안 발의선을 확보할지에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예측에 따르면 선거 후 참의원 내 개헌세력은 전체 의석(245석)의 3분의 2(164석)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 대상이 아닌 의석 가운데 개헌세력은 79석에 달해 선거에서 여권 등 개헌세력이 85석을 넘으면 발의 조건이 충족된다. 개헌안 발의선 확보는 무당파의 향배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이번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를 적극 활용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 꺼내 든 수출 규제 강화를 참의원 선거 고시일(4일)에 발효하고, 자민당 후보들에게 해당 내용을 연설에 적극 활용하라는 지침까지 내렸다. 일각에서는 이번 선거가 일본 언론의 예상대로 여권에 유리한 결과로 끝나면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에 숨 고르기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대(對) 한국 경제보복 조치 단행 후 일본 정부는 이런 조치가 일본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며 ‘자유무역 수호’라는 일본의 기조에도 반한다는 비판을 자국 내에서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아베 총리가 이후에도 한국과의 갈등 상황을 유지해가며 국내 정치에 ‘한국 때리기’ 카드를 계속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아베 총리는 2021년 9월까지 자민당 총재 임기를 확보해 같은 시점까지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지만, 현행 규정으로는 추가적인 총재 연임이 불가능해 집권 3기 임기의 후반으로 갈수록 정권의 구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아울러 아베 정권 입장에서는 개헌 세력이 개헌 발의선을 확보하더라도 개헌 실행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보수층을 계속 결집해야 한다.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가 이르면 올해 연말 열릴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데, 총선에서 개헌 열망이 강한 보수층을 계속 ‘아군’으로 유지하기 위해 한국에 대해 추가적인 보복 조치를 발동할 가능성도 크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아베 총리가 개헌과 한국 때리기에만 몰두하자 일부 전문가들은 결국 경제 부양에 노력하지 않으면 선거에서 승리하더라도 정치적 안정을 확보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을 내놨다. 글로벌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의 경제학자 이즈미 드발리에는 지난 19일(현지시간)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무난하게 승리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중요한 점은 경제회생”이라고 밝혔다. 집권 자민당이 제1당을 확보할 수는 있겠지만, 아베 총리가 보장받은 임기까지 안정적으로 집권하려면 결국 경제도 함께 회복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드발리에는 “지금까지 아베 총리는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지나치게 통화정책에 완화한 측면이 있었다”며 “앞으로 경제를 더 띄우려면 재정정책을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특히 CNBC는 일본 금융청이 지난달 노후생활을 위해선 연금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2000만엔(약 2억1,700만원)을 저축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한 것도 여론을 술렁이게 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일본 내 민심은 경제에 따라 움직이는 만큼, 참의원 선거 이후에는 아베 총리가 경제정책을 꺼내야 한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