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절규·악다구니에 묻힌 '오컬트 액션'

[리뷰] 영화 '사자'

군더더기 없이 몰입도 높은 도입부

지루한 서사 전개에 이내 힘 잃어

'액션+공포' 장르 결합 시도했지만

'박쥐''곡성'보다 깊이·테크닉 떨어져

영화 ‘사자’의 스틸컷.영화 ‘사자’의 스틸컷.



영화 ‘사자’의 도입부는 썩 괜찮다. 10분 남짓한 프롤로그는 주인공의 전사(前史)와 장르적 지향을 효율적으로 요약한다. 어린 시절 아빠(이승준 분)를 잃은 용후(박서준 분)의 사연을 군더더기 없이 소개하고, 촉촉한 드라마와 오컬트 호러를 오가며 관객의 감정을 쥐락펴락할 것임을 선언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딱 여기까지다. ‘사자’는 감정적 온기와 장르의 짜릿한 쾌감을 동시에 품은 도입부의 힘을 이내 잃어버린다.

아빠를 떠나보내고 신을 적대하는 이종 격투기 선수로 자란 용후는 어느 날 손바닥에 생긴 상처를 발견한다. 현대 의학으로는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상처라는 것을 알게 된 용후는 신 내림을 받은 무당의 도움으로 구마 사제(안성기 분)를 만난다. 손바닥의 상처에 신비한 힘이 있음을 깨달은 용후는 구마 사제와 함께 세상에 악을 퍼뜨리는 검은 주교(우도환 분)를 찾아 나선다.

영화 ‘사자’의 스틸컷.영화 ‘사자’의 스틸컷.


영화 제목인 사자(使者)는 신의 계시를 받은 선지자를 뜻한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루는 오컬트 장르 안에 신과 인간의 관계를 녹여내겠다는 야심을 제목에서부터 드러낸 셈이다. 실제로 ‘사자’는 인간의 고통과 신을 향한 인간의 원망을 모두 담고 있고, 이런 복잡다단한 세속의 감정을 액션과 공포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장르로 풀어낸다. 그러나 이 작품은 종교 영화로 읽을 때 ‘박쥐’보다 주제의식의 깊이가 부족하고 오컬트 영화로 읽을 때 ‘곡성’보다 장르를 다루는 테크닉이 떨어진다.


경호업체 직원, 아파트 모녀, 보육원 소년 등 검은 주교의 통제를 받는 마귀들은 공간과 인물을 바꿔가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용후와 검은 주교가 최후의 일전을 펼치기 전까지는 그 과정이 지루하게 늘어지는 반면 장르적 엑센트를 힘줘 찍어야 할 마지막 싸움은 절규와 악다구니만 남긴 채 싱겁고 허무하게 끝난다. 뒤이어 나오는 결말도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껏 진지한 장면 뒤에 이어지는 유머는 영화의 분위기를 산뜻하게 일신하는 대신 그저 생경하고 뜬금없이 다가온다. 사제의 구마 가방과 성수병, 검은 주교의 까마귀 반지 같은 소품도 일시적으로만 관객의 눈길을 잡아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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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하고 생기 부족한 영화에 그나마 온기를 불어넣는 것은 안성기의 푸근한 연기다.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악령을 내쫓는 신의 대리인과 상처 많은 용후를 아버지처럼 품어 안는 따뜻한 인간의 얼굴을 동시에 구현했다. 일종의 ‘버디 무비’처럼 안성기와 자주 한 프레임에 잡히는 박서준은 그에 필적할 만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이는 박서준의 문제라기보다 상투적인 각본과 경직된 캐릭터가 그에게 마음껏 뛰어놀 환경을 마련해주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데뷔작 ‘청년경찰’로 쫄깃한 연출력을 보여준 김주환 감독의 두 번째 영화이기에 더욱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총 제작비 147억원이 투입됐으며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배급을 맡았다. 오는 31일 개봉.

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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