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바이칼호




옛날 옛적 한 무리의 백조가 하늘에서 내려와 바이칼호에 몸을 담그더니 아름다운 처녀로 변해 목욕을 했다. 이를 지켜본 한 사냥꾼이 백조 옷을 감추니 옷 주인인 처녀는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냥꾼과 결혼해 11명의 아이를 낳았다. 많이 들어본 내용이다. 백조를 선녀, 사냥꾼을 나무꾼으로 바꾸기만 하면 누구나 알고 있는 선녀와 나무꾼 설화 아닌가. 바이칼호 주변에는 이 밖에도 효녀 심청과 비슷한 설화가 전해지고 우리 성황당과 비슷한 것이 남아있다. 정설은 아니지만 일부 학자는 바이칼호에 살던 몽골리안의 한 갈래가 목초지를 따라 동남쪽으로 이동을 거듭한 끝에 한반도에 정착한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바이칼호를 흔히 우리 민족의 시원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바이칼호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죽은 비극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볼셰비키 혁명 직후인 1920년 겨울 적군에게 쫓기던 백군은 바이칼호까지 도망쳤다. 3만명에 달하는 백군은 재기를 기대하며 마침 얼어있는 바이칼호를 건너는 ‘시베리아 얼음 행군’을 시작했다. 하필이면 당시 호수에 유례없는 추위가 닥쳤고 이들은 끝내 호수 한복판에서 모조리 동사했다. 봄이 되자 얼음이 녹았고 이들의 주검은 모두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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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호는 물이 깨끗하기로 유명하다. 물이 어찌나 깨끗한지 수심 40m까지 훤히 보여 ‘지구의 푸른 눈’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수심 500m 되는 이곳에서 채취한 물은 워낙 정평이 나 페트병 한 병에 5달러를 받아도 없어서 못 판다. 이런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호수 바닥에 사는 ‘에피스추라’라는 새우처럼 생긴 갑각류가 물속에 있는 오염물질을 여과해 호수를 깨끗하게 유지한단다.

에피스추라도 더는 감당하지 못한 걸까. 바이칼호가 요즘 심각한 수질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모양이다. 러시아 환경보호운동가들이 미국 영화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바이칼호를 구해 달라”는 키릴문자(러시아문자) 호소문 댓글을 달고 있다고 영국 BBC방송이 보도했다. 디캐프리오가 평소 환경운동을 열심히 펼쳐온데다 할머니 출생지가 러시아라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바이칼호는 일본이 한반도에서 떨어져 나가던 즈음인 2,500만년 전에 생겼다. 그렇게 긴 세월을 고고하게 지내온 호수를 인간이 고작 몇 십년 만에 파괴해서야 되겠는가. 지구인 모두가 반성할 일이다. /한기석 논설위원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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