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삼성 M&A 1건 하는동안...해외 반도체·차는 투자 늘리고 줄합병

[韓 내우외환 틈타 덩치키우는 글로벌기업]

獨 인피니언, 11조에 美 전력반도체업체 인수 등

기업간 인수합병·물밑동맹 움직임 갈수록 거세져

반도체 지각변동 속 국내기업 글로벌시장서 소외

3035A03 그래픽(35판)



최근 반도체 업계에 의미 있는 인수합병(M&A)이 2건 있었다. 지난 6월 차량용 반도체 업계의 최강자 독일 인피니언이 미국의 플래시메모리 및 전력 반도체 업체 사이프러스를 11조8,600억원(90억유로)에, 7월에는 반도체 장비 업계 1위인 미국의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가 일본 업체 고쿠사이일렉트릭을 2조6,700억원(2,500억엔)에 각각 사들인 것이다. 두 사례는 통상적인 M&A와 달랐다.

우선 인피니언의 사이프러스 인수는 미중 무역분쟁으로 매출 의존도가 25%에 달했던 중국 시장에서 실적 타격이 커진 데 따른 조치다. 핀치에 몰린 인피니언으로서는 사이프러스를 통해 안정적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를 원했다. 한마디로 기술패권을 둘러싼 무역분쟁에서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밸류체인에 적응하려는 기업의 몸부림 성격이 짙다.

그런가 하면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의 고쿠사이 인수는 미일 반도체 연합이 강화되고 있는 증표로 보는 시각이 많다. 애초 고쿠사이는 중국 업체들이 군침을 흘렸었다. 미국 반도체 장비의 대(對)중국 수출이 막히면서 중국 업체로서는 기술력을 갖춘 장비 업체 인수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입김이 작용하면서 고쿠사이는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의 품에 안겼다. 일본 정부의 한국 기업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의 이면에 ‘한국 반도체를 견제하려는 미국과 일본 간 암묵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음모론적 분석이 힘을 얻고 있음을 떠올리면 의미심장한 측면이 적지 않다.


문제는 반도체 시장의 지각변동 속에서 한국 기업이 소외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미국 주도의 반(反)화웨이 드라이브에 가슴 졸였던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이제는 일본의 소재 수출규제에 발목이 잡혔다. 자칫 공장이 설 수도 있는 판이니 M&A 등 전략적 결정은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삼성이 최근 1년6개월 동안 인수한 기업이라고는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인 코어포토닉스 1개뿐이다. 업계의 한 임원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칩 사용 급증으로 다품종 소량생산의 비메모리 강화를 위해, 또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사업 재정비 및 사업 다각화 차원의 수요 때문에 물밑에서 M&A 움직임이 끓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발등의 불(소재 수출규제)을 끄기 바쁜 상황”이라고 자조했다.

관련기사



5월 삼성은 오는 2030년 비메모리 1위에 오르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비메모리의 중추 격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제조)에서 업계 1위인 TSMC보다 최첨단 공정인 극자외선(EUV) 기술력이 앞서 있다는 자신감이 작용했다. 하지만 EUV용 포토레지스트가 수출 규제 품목이 되면서 청사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한 실무자는 “사실상 대체재가 없는 EUV용 포토레지스트의 수출규제가 계속되면 당장 양산 공정에 문제가 생기고 앞으로 나올 몇 년 뒤의 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와의 협력작업도 불가능해진다”며 “고객들이 삼성과 관계를 끊고 TSMC로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TSMC는 삼성이 주춤한 틈을 타 공격적인 투자에 들어갔다. 남부 타이난 산업단지에 새로운 EUV 생산라인을 짓는 한편 북부 신추 산업단지에 3나노 공정을 적용한 생산라인을 건설하기 위한 정부 인가도 획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5세대(5G) 이동통신 반도체 생산을 위해 7나노와 5나노 생산능력 확충에도 나섰다. 최근 IBM·엔비디아·퀄컴·인텔 등 콧대 높은 대형 고객과 잇따라 거래를 텄던 삼성으로서는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우위가 확실했던 메모리도 살얼음판이다. 초격차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EUV 공정을 적용한 메모리 제품 개발이 필수다. 하지만 수출규제가 장기화하면 제품 개발이 연기되고 후발주자와의 기술격차도 줄어든다. 이미 미국과 일본의 경쟁업체들은 내심 도약을 모색 중이다. 올 상반기에 40년 만에 D램과 낸드를 섞은 ‘3D크로스포인트’로 다시 D램 시장에 뛰어든 인텔은 사물인터넷(IoT)과 모바일 프로세서 분야에서 꾸준히 투자를 늘리고 있다. 메모리 3강으로 꼽히는 마이크론, 기업공개를 앞둔 도시바 등도 내부적으로 삼성과 하이닉스의 생산차질이 빚어질 경우 과실을 챙기기 위한 전략 마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도시바는 도쿄증시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메모리 시장에서 입지를 확대한다는 복안이다.

미국의 노골적 견제로 선택과 집중을 통한 리스트럭처링에 돌입한 중국도 반도체 사업 추스르기를 본격화하고 있다. 반도체 설계 자산 업체인 미국의 실바코와 조인트벤처를 설립하려는 것도 이런 움직임의 일환이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업계에서 첨단 기술·투자경쟁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일본의 소재 수출규제로 인해 한국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맞은 것은 틀림없다”며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판도가 흔들릴 여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자동차 업계도 우리나라의 일본 ‘화이트리스트’ 제외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탄소섬유 등이 전략자산에 포함될 경우 수소차 등 미래 차 경쟁에서 어려움이 예상된다. 도요타·폭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전기차 배터리 등에 대한 과감한 투자에 나서는 상황에서 일본의 수출규제는 또 다른 악재가 될 수 있다. /이상훈·박시진기자 shlee@sedaily.com

이상훈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