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이 30일부터 ‘안보국회’를 개최하고 다음달 1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추가경정예산안과 일본의 경제보복 철회 요구 결의안, 민생법안 등을 일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사실상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의 제안을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전격 수락한 것이다.
이인영 민주당, 나경원 한국당, 오신환 바른미래당 등 교섭단체 원내대표는 29일 오후 국회에서 7월 임시국회 의사일정에 합의했다. 앞서 나 원내대표와 오 원내대표는 지난 26일 국회 소집 요구서를 냈고 문희상 국회의장은 이날 오후2시 국회를 소집한다고 공고했다. 합의문에 따르면 여야 3당은 30일부터 안보국회의 일환으로 운영위원회·국방위원회·외교통일위원회·정보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최근 안보상황 등에 대한 현안질의를 실시한다. 아울러 러시아 군용기의 영공 침범 및 일본의 독도 망언과 관련해 러시아·일본의 영토주권 침해를 규탄하고 중국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히는 결의안을 채택한다. 또 같은 날부터 추경 심의를 재개한다.
여야는 우선 오는 8월1일 본회의를 소집해 경기 활성화를 위해 시급한 처리가 요구됐던 추경안과 민생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추경안은 국회 제출 98일 만에 처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본회의에서는 이외에도 일본의 경제보복 철회 요구 결의안 등을 비롯한 총 3개의 결의안, 인사에 관한 안 등도 함께 처리한다. 합의문에 적시되지는 않았지만 30일 외통위 회의에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모두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할 것처럼 보였던 의사일정 논의는 나 원내대표가 추경과 안보국회를 동시에 열자고 제안하면서부터 급물살을 탔다. 그는 오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원포인트 안보국회를 열어 대(對)러시아·대중국·대일본 규탄 결의안과 추경안을 동시에 처리하자고 여당에 제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추경안 처리와 북한 목선 국정조사 실시 또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 해임안 처리를 결부시켰던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난 것이다. 나 원내대표는 합의문 발표 직후 정 장관 해임건의안 표결 건과 관련한 질문에 “이번 국회에서 표결에 부치지는 않기로 했다”면서도 “잠시 보류하는 것으로 봐달라”고 답했다.
한국당의 이 같은 입장 변화는 ‘국정 발목잡기’라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결과로 풀이된다. 각종 경제지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추경안이 계속 처리되지 못할 경우 그 책임 소재가 야당으로 옮겨올 수 있다는 게 한국당의 판단이다. 또 패스트트랙 정국 충돌 사태와 관련해 의원들이 경찰에 소환되고 있는 상황에서 개점휴업 상태의 임시국회를 그대로 뒀다가는 자칫 ‘방탄국회’를 열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집권 야당’이라는 프레임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오 원내대표는 합의 직전 기자들과 만나 “추경안을 처리하고 안보 관련 상임위를 개최하는 것은 당연히 국회가 해야 할 일”이라며 “집권 야당인 민주당이 이것저것 자꾸 재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가 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꼬집기도 했다. 한국당이 북한 목선 관련 국정조사 실시, 정 장관 해임결의안 표결 등의 추경안 처리 선제조건을 내려놓으면서 더 이상 야당의 안보국회 개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명분이 사라졌다는 점도 이번 합의에 힘을 실은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추경의 증감액을 둘러싼 팽팽한 줄다리기는 계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 원내대표는 합의문 발표 자리에서 “추경으로 경제·안보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해재난 및 미세먼지·경기대응 추경, ‘민생’ 추경을 기다린 국민에게 송구스럽지만 늦었지만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는 “야당으로서는 그동안 추경안이 내용상 매우 부실하고 실질적으로 빚내서 편성하는 것이라 선뜻 처리해주기 어려웠다”며 “국회가 가진 고유 심사권으로 철저하고 꼼꼼하게 따져보고 부끄럽지 않은 추경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야의 합의에 청와대는 환영의 뜻을 전했다. 한정우 청와대 부대변인은 합의 직후 서면 브리핑을 통해 “늦었지만 여야가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대응 예산을 포함한 추경 심의’에 합의한 것을 환영한다”며 “추경안이 원만하게 처리돼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한 지원이 신속히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임지훈·방진혁기자 jh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