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규제로 양국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가운데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무관세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에서 팔리는 혼다·닛산 자동차의 경우 10대 중 9대가 미국 공장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농산품 시장의 피해를 보는 대신 주요 무역 흑자 제품인 자동차 시장의 문호를 열었는데 정작 자국 시장은 열지도 않은 일본 차들이 수혜를 보고 있는 셈이다. 관세 면제 규모도 연간 최대 300억원에 육박한다. 특히 일본 기업들이 이런 혜택을 보고도 사회적 책임에는 등한시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1일 금융감독원과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국내 3대 일본 자동차 브랜드가 한미 FTA로 보는 혜택이 한 회사당 많게는 연간 3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 혜택은 혼다코리아와 한국닛산·한국토요타 순으로 많이 보고 있다.
일본 3사가 본 관세 혜택은 특수관계자 거래로 추정할 수 있다. 한국닛산은 지난해 닛산노스아메리카법인과 1,150억원 규모의 재고자산매입 거래를 했다. 한국닛산이 국내에서 파는 주력 차종은 중형 세단 알티마다. 미국 테네시주 스머나 공장에서 생산된 알티마를 한국으로 들여와 판매한다. 만약 알티마를 일본에서 생산해 한국에서 판매하면 관세법에 따라 8%의 세금과 인증도 따로 받아야 한다.
하지만 한미 FTA로 2016년 차에 대한 관세가 철폐되면서 한국닛산도 거래금액의 약 8%(92억원)에 달하는 세제혜택을 봤다. 2016년 이후 3년간 한국닛산이 본 관세혜택은 2017년 110억원(거래액 1,383억원), 2016년 122억원(1,534억원) 등 3년간 약 32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혼다코리아가 누린 관세 혜택은 더 클 것이라는 게 업계의 추정이다. 혼다코리아는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하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HR-V를 제외한 모든 모델을 미국에서 들여온다. 혼다코리아의 지난해 국내 판매량은 7,956대로 한국닛산(5,053대)보다 많다.
혼다코리아는 한국닛산처럼 미국 법인과 거래하지 않고 미국 차를 글로벌 혼다 본사에서 사오는 구조다. 이 때문에 감사보고서에는 미국 법인과의 거래액이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미국 외에서 국내로 들여온 혼다 차는 HR-V(160대·전체 2%)뿐이다. 혼다 본사와 거래한 금액 대부분이 미국에서 차를 들여오는 데 쓰였다. 지난해 혼다코리아가 본사와 거래한 금액은 3,636억원이다. 한미 FTA로 본 관세혜택은 약 285억원으로 추정된다. 혼다코리아는 2016년 2,011억원, 2017년 3,102억원의 거래를 했다. 이 과정에서 연간 200억원 안팎의 관세를 아꼈다.
토요타는 고급 브랜드 렉서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모델을 일본에서 생산해 관세 8%를 물고 국내에 들여오고 있다. 하지만 대형 세단 아발론은 미국 공장에서 생산해 국내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관세가 면제된다. 지난해 토요타는 토요타모터세일즈USA과 412억 원을 거래해 약 33억 원의 관세 혜택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토요타 역시 지난 2011년~2017년 중형 세단 캠리를 미국에서 생산하며 관세 혜택을 받았다. 한국과 미국이 철폐한 자동차 관세의 수혜를 미국 회사인 포드(2018년·1만 1,586대)보다 일본 3사가 혜택을 ‘어부리지’로 더 누리는 셈이다.
FTA는 관세를 없애고 자유무역을 촉진해 교역을 늘리는 방식으로 서로 이익을 추구한다.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미국에 공장을 두고 한국에 수출해서 관세혜택을 받는 일은 원칙적으로 비난할 일이 아니다. 독일 업체인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도 미국에서 생산된 SUV를 국내에 관세 혜택을 받고 들여온다. 하지만 독일 차 업체들은 한미FTA 외에도 한EU FTA를 체결해 유럽과 미국 어디서는 무관세 수출이 가능하다. EU는 우리나라와 FTA를 맺으며 서로 자국 산업의 문호를 연 상호 호혜적인 관계다. 하지만 일본 업체들은 자국의 무역 장벽은 그대로 둔 채 한국 수출은 미국을 통해 하면서 관세 혜택을 보고 있다.
더욱이 FTA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의 피해를 감수하면서 체결하는 협상이다. 한미FTA의 피해 산업은 농산품이었고 대표 수혜산업은 자동차였다. 우리 정부는 한미FTA에서 피해를 본 농업을 지원하기 위해 2007년 이후 10년 간 약 20조 4,000억원(재정 18조 2,000억원)의 혈세를 투입했다. 20조원의 혈세가 들어간 협정의 최대 수혜자가 체결 당사국 기업이 아닌 일본 기업이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한미FTA로 인해 관세 혜택을 보는데 한국에 대한 기여는 인색하고 이익을 본국으로 돌리는데 혈안이 된 일본 차 업체들의 경영이다. 한국닛산은 2005년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후 기부금이 4억 1,000여만 원에 불과하다. 혼다코리아도 2005년 이후 13년 간 5억 1,000만 원만 기부했다. 심지어 혼다코리아는 투자·상생협력 촉진에 따른 과세특례에 따른 투자·임금증가 등의 조건을 채우지 못해 올해 법인세를 추가로 물어야 할 판이다. 토요타는 지난해(509억원) 빼고는 2009년 이후 생긴 모든 이익을 일본 본사에 배당했다. 이익잉여금을 대부분 국내에 남기고 매년 20억원 넘는 기부를 하는 메르세데스-벤츠와 수백 억 원을 재투자해 국내에 드라이빙 센터를 지은 BMW와는 딴판이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이익을 위해 생산지를 최적화하는 기업의 글로벌 전략이 비난 받을 일은 아니다”며 “강제할 순 없지만 (혜택·이익을 준) 사회에 대한 책임을 높이라는 요구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