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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21세기 국제정치와 투키디데스]이기심이 지배하는 국제사회...약소국에 정의란 없다

■로버트 D.카플란 지음, 김앤김북스 펴냄

펠로폰네소스·포에니 전쟁서

춘추전국시대 중국까지 소환

'투키디데스 함정' 역사 되짚어

현실주의 입각한 국제관계 강조

패권전쟁속 정부의 역할에 방점





기원전 5세기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벌인 그리스 남부의 옛 성벽.기원전 5세기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벌인 그리스 남부의 옛 성벽.


고대 역사가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고대 역사가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


2,500년 전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고대 그리스가 들이킨 달콤한 축배는 잠시였다. 이내 아테네와 스파르타로 진영이 나뉘어 전쟁이 시작됐다. 기원전 431~404년 벌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이 시기를 살았던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전쟁은 필연적이었다’고 본다. 신흥 강국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따른 기존 강국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이 근본적 원인이었다. 아테네는 제국의 팽창을 결코 멈추고 싶지 않았고, 스파르타 또한 그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패권 국가와 신흥 강대국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다.

전쟁이 불붙은 고대 그리스에서 밀로스는 스파르타와 아테네 사이에 낀 작은 섬나라였다. 밀로스 사람들은 중립으로 남고자 했다. 하지만 아테네가 가만 두지 않았다. 밀로스 사람들은 아테네를 비난했다. “정의는 항상 존재한다”면서 정의를 존중하지 않음으로써 보복받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아테네인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그들은 냉정했다. “정의라는 것은 오직 힘이 동등한 나라들 사이에서나 따질 일”이라며 강한 자가 할 수 있는 일과 약한 자가 감내해야 할 몫을 ‘힘’으로 보여줬다.


밀로스는 함락돼 성인 남자들 대부분이 죽었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팔려갔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이를 기록했다. 부유한 가문 출신의 투키디데스는 스파르타 군대에 맞서 군대를 이끌었으나 눈보라 치는 날씨에 급습한 적을 제때 물리치지 못해 도시를 구할 수 없었다. 투키디데스는 불명예를 안고 아테네에서 추방당했고 스파르타가 지배하는 그리스 남쪽 반도를 여행하며 책을 썼다. 피눈물로 쓴 역사이기에 더욱 냉철했다.

새 책 ‘21세기 국제정치와 투키디데스’는 국제정치의 미래를 알고자 고대의 전쟁사를 다시금 불러냈다. 리비우스의 ‘포에니 전쟁’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비롯해 춘추전국시대 중국까지 소환했다.


투키디데스의 이야기가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사이에 낀 우리나라가 보이기 때문이다. 밀로스가 아닌 또 다른 약소국 미텔레네의 예도 섬뜩하다. 미텔레네는 페르시아에 맞설 적에는 아테네와 동맹을 맺었지만 과중한 동맹세 때문에 아테네로부터의 독립을 꾀하며 스파르타와 동맹을 맺었다. 미텔레네의 오판이었다. 쳐들어 온 아테네는 생각 이상으로 강했고, 기다렸던 스파르타의 지원군은 끝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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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고대 그리스의 성벽 사이로 본 바다.옛 고대 그리스의 성벽 사이로 본 바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역대 국제관계 이론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정치적 담론에 현실주의를 도입한 최초의 저작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관점은 이후 토머스 홉스, 알렉산더 해밀턴, 클라우제비츠로 이어졌다. 투키디데스가 주목한 것은 ‘이기심’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국가들은 상대를 설득할 때 정의나 이상이 아닌 이기심에 호소했다. 무엇이 이익이 되는가. 국가들은 결정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자국의 이익을 꼽았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철학자인 ‘손자병법’의 손자도 마찬가지다. 손자는 “전투의 개시는 정치의 실패를 의미하기 때문에” 최고의 미덕은 절대 싸우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자는 전쟁을 피하기 위한 전략적 우위 확보를 위해서라면 스파이를 활용하는 등 모든 방식의 간계가 용인된다고 봤다. 이는 손자보다 200년 뒤의 사람인 사마천도 비슷했다. ‘사기’에서 그는 “위대한 행동은 사소한 가책에 주저하지 않으며, 큰 덕은 세세한 사항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적었다.

국제정치 전문가인 저자는 투키디데스나 손자만큼이나 현실적이다. 그는 유럽과 발칸반도, 중동지역에서 25년간 현지 특파원으로 활동했고 미 국방부 산하 국방정책위원으로도 일했다. 더 크고 현실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적이고 작은 이해는 무시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무엇이 도덕적이고, 어떤 것이 미덕인지에 대해 마키아벨리는 국가의 안전을 위해 군주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목적이 수단까지도 정당화한다는 의미다. 즉, 민주적 가치를 적용한다는 큰 목적을 위해 민주적 가치 적용이 어려운 지역에는 비록 민주적이지 않을지언정 질서유지에 필요한 이념을 적용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주장이다.

이 책을 옮긴 번역자 이재규 전 대구대 총장은 “공산주의를 용인하고 평화를 지키려 했던 카터보다 공산주의에 대해 강경책을 취한 레이건이 현실적 도덕적인 지도자이고, 테러를 묵인했던 클린턴보다 테러와의 전쟁을 벌인 부시 대통령이 훨씬 도덕적이라고 저자는 보았다”고 밝혔다. 17년 전에 원저가 출간됐다고 ‘옛날 책’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국제정치의 앞날을 내다보기 위해 고대의 전쟁사까지 끄집어낸 것이니 말이다. 다만 이 책이 지금 쓰였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였을지는 궁금하다. 강대국간의 갈등 상황 안에 놓인 한국의 지도자들은 어떻게 역사가에 의해 기록될지도 함께 말이다. 1만2,000원.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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