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은 여전히 보릿고개를 넘어가는 중이다. 최악의 위기는 넘겼지만 그 과정에서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을 겪어야 했다. 최근 몇 년 다소 증가하는가 싶었던 글로벌 신조 발주는 올 들어 미·중 무역분쟁 여파 등으로 다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런 좋지 않은 업황에도 한국 조선업의 맏형인 현대중공업그룹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친환경·고효율·스마트십솔루션 등 신기술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를 통해 새로운 미래 사업을 발굴하고 기술과 품질 혁신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계획이다.
내년부터는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가 강화된다. 이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비싼 저유황유를 사용하거나, 오염물질을 걸러주는 스크러버를 설치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예 액화천연가스(LNG)로 가는 LNG 추진선을 만드는 것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차세대 LNG 추진선으로 앞으로 커질 이 시장을 선도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7월 유럽 선사와 1,630억원 규모의 2만톤급 LNG 추진 트레일러 선박(Ro-Ro선) 2척 건조계약을 체결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26척의 LNG 추진선을 수주했다. 이 선박은 길이 217m, 너비 32.2m, 높이 27.3m의 규모로 컨테이너를 적재한 트레일러 310여대를 수송할 수 있다. 내년 8월부터 울산 현대미포조선에서 건조에 들어가 2021년 11월부터 순차적으로 인도될 예정이다.
LNG 추진선은 황산화물 배출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질소산화물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각각 85%, 25% 이상씩 절감할 수 있어 2020년부터 강화되는 IMO의 환경규제를 앞두고 크게 주목받고 있다. 최근 KOTRA와 산업은행이 공동으로 펴낸 ‘글로벌 친환경 선박기자재 시장동향 및 해외시장 진출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세계 신조 발주 선박시장의 60.3%를 LNG 추진선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은 2025년까지 최대 1,962척의 LNG 추진선이 건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LNG 추진선에 연료를 공급하는 LNG 벙커링 인프라에 대해서도 유럽, 싱가포르, 일본, 한국 등지에서 정부 차원의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점도 향후 LNG 추진선 시장이 더욱 확대되는 데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해 7월 세계 최초로 LNG 추진 대형유조선을 인도하고, 같은 해 10월에는 LNG 추진 대형벌크선을 수주하는 등 LNG 추진선 분야에서 시장을 선도해 오고 있다. 또 LNG 추진선의 핵심기술인 연료가스공급시스템에 대한 독자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LNG를 실어나르는 LNG 운반선에 특화된 스마트십 솔루션도 개발해 적용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5월 업계 최초로 LNG선용 통합 스마트십 솔루션(ISS·INTEGRICT Smartship Solution)이 적용된 18만 입방미터급 LNG선 ‘프리즘 어질리티(Prism Agility)‘호를 SK해운에 인도했다.
이 선박은 스마트십 솔루션이 적용된 첫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통합 스마트십 솔루션은 현대중공업이 지난 2017년 업계 최초로 개발한 기술로, 선주가 화물창의 온도와 압력은 물론 슬로싱 현상을 실시간 모니터링 할 수 있으며 화물창 내 증발 가스량을 정확히 예측하고 이를 최대한 활용해 최적의 항로를 추천받아 경제적으로 운항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항해사의 개인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운항법을 표준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선내 정보통신기술(ICT) 플랫폼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운항 데이터를 수집·분석할 수 있다. 운항 효율성과 안전성을 그만큼 높일 수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속적으로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고 있다. 지난 6월 출범한 한국조선해양을 그룹 조선사의 기술 지원센터 역할을 하는 세계적인 R&D·엔지니어링 전문 회사로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최근 권오갑 한국조선해양 대표(부회장)은 담화문을 통해 “조선업을 노동집약적 산업이 아닌 기술 중심의 산업으로 전환시켜 나갈 것”이라며 “친환경 선박, 스마트십 등 남보다 앞서 관련 기술을 개발해 시장을 선도하는 회사가 돼야 한다”고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권 부회장은 “앞선 기술력과 품질을 확보한다면 업황의 부침에 상관없이 안정적인 수주가 가능하다”고 비전을 밝혔다. 그는 “지금과 같이 업황에 따라 희비를 겪어야 하는 ‘천수답 조선업’의 한계를 이제는 극복해야 한다”며 “불황에 대비하지 못해 겪어야 했던 구조조정의 아픔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이를 위해 판교에 ‘글로벌 R&D 센터’를 구축하고 연구개발인력을 지속적으로 양성할 계획이다.
/박한신 기자 hs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