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추가 피해 막으려면 외교적 노력을...지소미아 성급한 파기 안돼"

[화이트리스트서 韓 제외…시작된 경제전쟁]

■ 서경 펠로·전문가 진단

日 처사 부당하지만 맞대응 땐 출구없는 경제전쟁 우려

한일 갈등 틈 비집고 북중러 연일 도발...한미동맹 등 위기

강제징용 배상 판결문제 해법 진정성 있게 일에 제시를

0315A06 펠로



일본이 끝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서 한일관계 역사의 시계를 뒤로 돌렸다. 아베 신조 정권의 노골적인 한국 때리기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등 대일 강경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외교적 해법 또한 우리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일본의 이번 처사가 부당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지적하면서도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내 정치의 틀이 아닌 냉철한 국제 논리를 통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처럼 강경 대응을 하면 양국이 얻는 게 없고 피해만 입는다. 특히 대일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상 한국이 입는 피해가 더 크다”며 “한일관계가 나빠지면 북중러만 이롭게 할 뿐이다. 국내 정치의 틀이 아닌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자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북한의 연이은 무력시위와 한일 갈등으로 인한 틈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중러의 도발은 굳건한 한미일 안보동맹의 중요성을 재확인시켜줬다.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정세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의 추가 보복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동맹의 핵심 연결고리인 지소미아를 파기해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서경펠로(자문단)인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지소미아 파기 카드는 패착이라고 본다. 미국을 압박해 일본의 보복 조치를 철회하도록 한다는 구상은 위험하다”며 “특히 한일 지소미아는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국익을 위한 성격이 강하다. 이를 우리가 깨면서 한일 문제를 안보 영역으로 먼저 확전시켰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미국에 줄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도발에도 한국의 냉철한 대응이 필요한 이유는 안보뿐만이 아니다. 아베 내각이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실제 시행할 경우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한국이 일본의 조치에 맞대응 카드를 꺼낸다면 양국은 ‘출구가 없는’ 금융전쟁까지 펼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만큼 외교적 해법 외에 출구전략은 요원하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로 경제성장률 하락 효과는 0.4%포인트 정도로 추정된다”며 “반도체 경기가 침체되면서 결국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은 1.7~1.9%에 머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외국계 투자은행(IB)과 신용평가사 등에서는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한국은행 전망치(2.2%)보다 낮게 추정하고 있다. 이날 일본의 각의 결정 전에 발표된 유수 기관의 성장률 전망치를 보면 노무라증권은 1.8%, JP모건은 2.0% 등이다. 김상봉 교수는 “삼성전자 등에서 반도체 생산물량을 줄이면 가격은 올라갈 것”이라며 “다만 가격 효과가 수출물량 감소 효과보다 크지 않다. 오히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업체만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에 맞대응한다면 결국 금융전쟁까지 확전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일본이 당장은 반도체를 겨냥한 것으로 보이지만 만약 우리가 맞대응 카드를 제시한다면 기계류·자동차 등 산업 전반으로 수출 규제에 나설 것”이라며 “결국 서로 맞보복을 진행한다면 금융 규제까지 확대되면서 양국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자국 내 피해를 감소하면서까지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선택한 것은 끝내 우리나라가 굴복할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강조했다. 임승태 전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일본은 한일 간 경제전쟁이 벌어졌을 때 글로벌 밸류체인 관점에서 한국의 피해가 더 클 것이라고 예측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식 교수도 “일본은 내수 시장이 큰 경제이고 우리는 수출 시장이 큰 경제”라며 “한국으로의 수출이 줄어들더라도 일본은 극복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한국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실제 집행될 때까지 아직 21일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는 만큼 외교적 해결을 위한 기회는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일본의 추가 보복 조치로 한일관계 악화가 장기전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커진 것 같다”면서도 “이 조치가 완전 수출금지는 아니기 때문에 아직 시간적인 여유는 있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일본이 안보상의 이유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다고 밝혔지만 근본원인은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박철희 교수는 “일왕 즉위식 등 정치적 명분을 위한 계기보다는 문제의 근본원인이 된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한 내용이 있어야 한다”며 “회사 사장들이 만난다고 사업이 이뤄지지 않는다. 사업의 내용이 있어야 한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정성 있게 이에 대한 해법을 일본 측에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박우인·박형윤기자 wipark@sedaily.com

박우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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