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10% 관세 부과가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였다.” (켄 청 미즈호은행 환율전략가)
미중 무역전쟁 격화와 그에 따른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로 글로벌 자금의 안전자산 쏠림이 가속화하면서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일본 엔화와 미 국채가 글로벌 자금을 빠른 속도로 빨아들이는 반면 리스크 자산인 글로벌 주식시장은 일제히 곤두박질치고 원유와 철광석 같은 원자재 가격도 경기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 우려에 줄줄이 급락했다. 현재 미국은 다음달 중국과의 무역협상 재개를 앞두고 관세 압박에 더해 중·단거리미사일의 아시아 배치를 추진하면서 안보 측면에서도 중국과의 갈등요인을 키우고 있다. 중국 역시 위안화 평가절하와 미국산 농산물 수입금지 등으로 단호하게 맞서고 있어 당분간 시장 불안과 안전자산 선호 현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가치는 전날 대비 0.63% 뛴 달러당 105.91엔에 거래됐다.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나타나는 가운데 약 7개월 만에 엔·달러 환율 106엔 선이 무너졌다. 급격한 엔화 강세에 다케우치 요시키 일본 재무성 재무관은 이날 “필요할 경우 엔화의 과도한 움직임에 대응할 것”이라며 “환율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하겠다”고 강조했다.
엔화가치가 치솟으면서 미중 무역전쟁 확전 우려에 가뜩이나 흔들리던 닛케이지수는 전날 대비 1.74%나 급락한 2만720.29로 장을 마감했다. 엔화 강세에 따라 일본 기업의 수출실적이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주요 수출기업인 닛산은 주가가 4.3%, 파나소닉은 3.7%나 추락했다. 시장에서는 엔화 강세가 한동안 계속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골드만삭스는 “미중 무역전쟁이 다시 격화하면서 엔화 강세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엔화가치가 3개월 안에 달러당 103엔까지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날 뉴욕 증시 3대 지수와 유럽 증시의 주요 지수들도 장 초반 1~2%대의 낙폭을 나타내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대표적 안전자산인 국채 가격과 금값은 치솟았다.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0.079%포인트 하락한 연 1.767%에 거래됐다. 채권 수익률은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만큼 미 국채 수요가 증가했다는 뜻이다. 일본의 10년물 국채 역시 장중 한때 -0.2%까지 떨어져 3년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금 현물가격은 한때 1.19% 상승한 온스당 1,457.71달러로 6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무역긴장이 계속 높아지면서 위안화가 상징성이 있는 7위안 선을 돌파하자 투자자들이 아시아 전역의 주식과 다른 위험자산을 매도하고 있다”며 “이들이 안전자산인 엔화와 미 국채로 뛰어들었다”고 분석했다.
반면 원자재 가격은 무역분쟁에 따른 글로벌 경기둔화 전망에 약세를 보였다. 이날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북해산 브렌트유 선물가격은 각각 전 거래일 대비 1%대의 낙폭을 보였다. 철광석 선물가격은 싱가포르거래소에서 전 거래일 대비 8.6% 급락한 톤당 94.32달러에 거래되며 두 달 만에 100달러를 밑돌았다.
앞서 2일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3개월물 구리 가격도 전날보다 2.87% 떨어진 톤당 5,729.50달러로 마감했다. 글로벌 경기의 선행지표로 통하는 구리 가격은 이날 시간외거래에서 톤당 5,718.50달러까지 떨어져 2017년 이래 최저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LME에서 거래되는 니켈과 알루미늄·주석·아연 등 다른 원자재도 일제히 가격이 하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글로벌 성장세가 약해질 수 있다는 공포에 구리 가격이 2년 만에 최저치까지 낮아졌다”며 “세계 경기를 가늠할 수 있는 금속은 지난해 8월 이후 이번주에 가장 많이 하락했다”고 전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