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新포퓰리즘과 한일 치킨게임

<김광덕 논설위원>

'강한 일본' 내세운 아베 내각

'日에 지지 않겠다'는 文정부

민족정서 격화땐 관계 파국 위기

한일, 확전 경계 최우선 해야




“의회민주주의 모델로 통했던 영국에서 신사들이 주도하는 의회민주주의는 수명을 다한 것 같다. 신사의 나라에도 포퓰리즘 바람이 덮쳤다.”

영국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한 대학교수는 최근 영국의 보리스 존슨 새 총리 선출을 포퓰리즘 등장으로 묘사했다. 존슨 총리가 ‘괴짜 정치인’ ‘영국판 트럼프’로 불리는 것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강력 지지파인 존슨은 거침없는 말과 돌발적 행동 등으로 주목받았으며, 여성 편력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이 교수는 “세계 곳곳에서 양극화 심화로 중산층이 붕괴하면서 좌파와 우파의 포퓰리즘 정권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진국 포퓰리즘 사례로 영국의 존슨 내각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일본의 아베 신조 내각 등을 들었다.

남미에서 유래된 포퓰리즘은 본래 일반 대중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행태를 이르는 말이다. 요즘 선진국으로 번진 유사한 움직임은 신(新)포퓰리즘으로 이름 붙일 수 있다. 신포퓰리즘 특징으로는 우선 국가와 민족·인종 등을 부각하고 ‘자국 이익 최우선’을 내세운다는 점이다. 지도자의 직설적·감성적 화법과 반(反)엘리트주의, 분열의 정치 등도 주요한 특징이다. 선심 정책, 선동 정치, 대중 동원 등 원조 포퓰리즘 속성들도 그대로 이어진다.


요즘 한일 갈등을 정점으로 치닫게 하는 것도 신포퓰리즘이다.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양측 모두 파국을 맞게 되는 ‘치킨게임’처럼 전개될 우려도 있다. 문재인 정부와 아베 내각은 ‘반일’과 ‘혐한’ 감정의 물결을 타면서 마주 보며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는 형국이다. 아베 내각은 전형적 신포퓰리즘 정권이다. 아베 총리는 ‘강한 일본’을 구호로 내세워 패권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아베 내각은 패권국 고지에 오르기 위해 과거사 장애물을 건너야 한다. 그러나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한국과의 역사 갈등이 이슈로 떠오르자 아베 내각은 엉뚱한 ‘경제 보복’ 카드를 꺼냈다. 또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만드는 개헌을 밀어붙이기 위해 한국 때리기로 보수층 결집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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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와 여당도 신포퓰리즘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여권 인사들은 ‘죽창’ 든 ‘의병’을 거론하면서 전의를 다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2차 경제보복 조치 직후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며 민족 정서를 부각했다. 감성에 호소하다 보니 사실과 거리가 먼 언급을 한 경우도 있다.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단숨에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 “일본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한다” 등이 대표적 사례다. 양국이 충돌할 경우 경제적 파장은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으면서 내수보다 수출 의존도가 훨씬 높은 한국에서 더 크게 나타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일본에서 15%가량에 그치지만 한국에선 40%를 넘는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는 일본 여행 금지, 2020 도쿄 올림픽 보이콧, 1965년 한일협정 체제 청산 등 강경 카드들이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당 공식 회의에서 “아베 정권은 곧 쓰러질 정권”이라는 일본 패망론도 거론됐다. 이 같은 오버액션을 보면 최근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한일 갈등 보고서에서 “총선 영향은 긍정적일 것”이라고 분석한 의도를 짐작하게 된다. 야권에선 여당이 내년 총선 때 남북 관계와 한일 관계 즉 북풍(北風)과 일풍(日風)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구심마저 제기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정면충돌하더라도 양국의 정권 기반은 상당 기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양국의 경제적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게다가 한국 국민 5,100만명과 일본 국민 1억2,600만명이 경제 전쟁터에서 감정 싸움에 휘말린다면 관계 복원에 수많은 세월이 걸린다. ‘부러진 손은 고칠 수 있지만 상처 받은 마음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말이 있다. 신포퓰리즘 파고에 휘말려 선량한 양국 국민들의 마음까지 다치게 하는 쪽으로 확전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kdkim@sedaily.com

김광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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