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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김빛내리 "생물학 강국 되려면 동물실험 규제 현실화·원재료 국산화해야"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 RNA연구단장 창간 특별 인터뷰]

R&D는 이스라엘 수준 성장 불구

비현실적 제도·후진 생태계 여전

연구 초창기 시드머니 지원 없어

시약·기자재 대부분 빚내서 구매

연구비 배분구조 공정성 높이고

신진 연구자 더 많은 기회 제공을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 RNA연구단장./이호재기자.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 RNA연구단장./이호재기자.



“현재 한국의 생물학 연구는 전반적으로 이스라엘·네덜란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됐습니다.”

리보핵산(RNA) 연구를 비롯한 분자생물학과 미생물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김빛내리(사진) 기초과학연구원(IBS) RNA연구단장은 8일 서울 역삼동의 한 카페에서 서울경제신문 창간 59주년 기념인터뷰를 통해 “우리나라의 생물학 연구 수준이 세계 10위권 언저리인 11~12위권까지 왔다”고 평가했다. 10위권 안팎에는 프랑스·캐나다·네덜란드·이스라엘 등이 포진해 있는데 근래에 대한민국의 생물학 연구가 빠른 속도로 발전해 이같이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높아진 연구 수준에 비해 이를 뒷받침할 제도와 연구생태계 환경은 아직도 개선해야 될 점이 많다. 김 단장은 우선 비현실적인 제도의 합리화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며 자신의 경험담까지 털어놓았다. 그는 지난 2000년대 초반 국내에서 RNA 연구를 시작할 무렵 실험실을 차리고, 기자재를 구입할 예산이 모자라다 보니 시약 등을 구매하기 위해 큰 금액의 빚을 지게 됐다고 한다. 김 단장은 “미국 등에서는 연구자가 초창기에 실험실 등을 차릴 수 있도록 충분한 시드머니를 주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돈을 기대하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연구활동은 끊기지 않고 계속해야 하는데 (예산을 탈 수 있는) 연구과제 프로젝트는 단속적으로 주어지는 탓에 과제가 끊기면 어쩔 수 없이 시약 등을 외상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고 부채를 떠안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여전히 상당수 국내 연구자들은 현실에 맞지 않는 예산 집행 방식에 적응하느라 연구에 몰두하기 힘들다. 김 단장은 특히 “미국 등과 달리 한국에서는 연구실 행정지원인력 채용 예산 지원이 없어 한창 공부하고 연구해야 할 대학원생이 연구비 정산을 위한 영수증을 계산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환기했다.

동물실험에 대한 생명윤리제도의 현실화도 시급하다고 김 단장은 지적했다. 그는 “동물실험에 대한 윤리적 규제의 방향은 맞지만 과도한 측면이 있어 연구자들이 힘들어하더라”며 “그것이 현실에서 적용되는 단계에서 연구자는 유관 기관마다 생명윤리위원회를 일일이 통과해야 해 연구 기간이 지연되는 사례들이 생기고 있다”고 전했다.


연구생태계 측면에서 연구 원재료의 대외의존도 문제도 심각하다고 김 단장은 진단했다. 그는 “저희 분야의 경우 특히 미국·독일 기업들이 원재료 분야를 독점하다시피 해 의존도가 높다”며 “중요한 원재료 등은 국산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되 국내 시장이 협소해 내수만으로는 경제성이 떨어지므로 해외 수출도 겨냥해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일부 해외 독점 원재료의 경우 미국에서 공급하는 가격보다 한국에서의 공급가격이 2~3배나 높아 생물학 분야 연구개발(R&D) 예산의 상당액을 소진하게 되므로 이 같은 유통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김 단장은 제언했다.



아울러 기초연구를 상업적으로 응용할 산학생태계 측면에서 보면 해외에서는 기업 차원의 RNA 치료제 연구가 활발하지만 “국내에서는 RNA를 연구하는 기업들이 별로 없다”고 김 단장은 안타까워했다. 그는 미국에서도 초기에는 기업들이 치료제 개발에 실패한 경우가 많지만 그것을 견디고 꾸준하게 R&D를 한 기업들이 성공하더라며 한국 기업인들의 도전을 당부했다.

김 단장은 우리의 연구 역량도 더 축적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남들과 같은 속도로 발전하는 정도에 머문다면 결과적으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우리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연구 수준을 높여가고 있다고 김 단장은 전했다. 머지않아 중국이 선두권 그룹에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그는 내다봤다. 현재 생물학 분야의 R&D 상위권 국가는 미국·독일·일본·영국·중국·스위스 정도인데 중국이 R&D의 양적인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질적인 부분이 다소 미흡하더라도 독일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게 김 단장의 전망이다.

그런 차원에서 김 단장은 한국의 연구계가 보다 경쟁을 활성화하고, 우수한 신진 연구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단장은 “한국은 미국 대학식 연구 시스템을 도입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미국식 체계에 딱 들어맞는 것도 아니다”라며 “예를 들어 교수의 테뉴어(종신재직)에 대해서는 심사 체계는 갖췄지만 사실상 거의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탈락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연구비 배분구조도 보다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김 단장은 강조했다. 특히 “풀뿌리 지원방식의 소규모 지원으로 연구자들을 키우는 한편 그렇게 성장한 연구자들이 외국과 경쟁하기에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그가 주력해온 RNA 분야는 어떨까. 다행히 기초연구 차원의 연구는 국내에서도 활발하다. RNA 분야에 집중하는 국내 랩(연구실)이 현재 30여개 정도에 이른다고 김 단장은 전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RNA연구단 차원에서는 분석과학·구조생물학·생물정보학 등 서로 다른 분야의 다양한 연구자들이 모여들게 됐다고 한다. 물론 선발국들에 비해 갈 길은 여전히 멀다. 김 단장은 “미국에서는 RNA를 연구하는 랩이 셀 수 없이 많고, 일본에서는 RNA 소사이어티가 (별도의 학계로) 독립해 있는 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분자세포생물학의 한 분과로 분류돼 있다”고 말했다. 인재영입 여건에 대해서는 “ 아직은 우수한 학생들이 의대로 가려는 경향이 많아 생물학계 전반적으로는 여전히 힘들다”고 말했다.

RNA에 대한 기초연구 성과를 응용하는 산업화 차원에서 선진국은 빠르게 치고 나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단백질의 작동을 통제해 생명체가 제대로 자라나고 면역체계와 신경계를 갖추도록 조절하는 마이크로RNA(miRNA)에 대한 응용연구가 속도를 내고 있다. miRNA의 형성과정과 작동원리를 규명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김 단장은 “miRNA가 처음 발견된 건 1993년이었는데 이후 25년 만인 지난해에 앨라일람제약이 최초로 인공적으로 miRNA를 만들어 합성한 치료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해당 치료제는 희귀 유전질환인 hATTR에 적용돼 치료가 이뤄지고 있는데 효과가 상당히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제약사들은 주로 저분자화학물을 원료로 약물을 만들었는데 개발기간이 길고, 제조공정이 까다로워 특정 질환을 겨냥해 약품으로 만들려면 보통 10~15년이 걸렸다”며 “반면 RNA의 경우 어떤 유전자가 문제를 일으키는지만 알면 바로 (치료물질로) 디자인할 수 있어 개발기간이 단축돼 몇 주안에 치료용 후보물질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해당 후보물질의 안전성을 가늠하는 전임상실험 기간까지 감안해도 1년 정도면 치료제 개발이 완성된다. 또한 생산공정이 간단해 기존 약품들보다 개발·제조비용이 크게 낮아진다. 따라서 과거에는 경제성이 낮아 개발하기 쉽지 않았던 희귀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도 miRNA 연구가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김 단장은 말했다.

RNA의 또 다른 종류인 메신저RNA(mRNA)도 신약개발의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mRNA는 데옥시리보핵산(DNA)의 정보를 단백질에 전달해 특정 배열의 아미노산으로 합성되도록 하는 전령 역할을 한다. 김 단장은 “그동안 백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독성을 없애기 위해) 바이러스를 죽이든지, 정제해서 넣어야 했는데 mRNA는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원료물질로) 디자인해 투입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따라서 “불과 며칠이면 백신을 생산할 수 있어 갑자기 신형바이러스가 창궐하면 신속한 백신 제조가 가능하다”고 부언했다. 아울러 mRNA를 활용하면 암 환자별로 다른 유전자 특성에 따라 맞춤형 약물도 만들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민병권·백주원기자 newsroom@sedaily.com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 RNA연구단장 /이호재기자.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 RNA연구단장 /이호재기자.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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