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일상속 기술의 과거·현재·미래…그 속에서 '나'의 의미를 묻는다

■최형섭의 테크놀로지로 본 세상

<1>들어가며-종이지도의 추억

1015A10 테크놀로지



몇 년 전 미국 출장 중에 있었던 일이다. 차를 빌려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를 출발해 뉴욕주 로체스터로 가는 여정이었다. 렌터카 업체에서 GPS 장비를 빌리겠느냐고 물었지만 거절했다. ‘주머니 속에 스마트폰이 있으니 무슨 걱정이람?’ 나는 자신만만하게 차를 몰아 북쪽으로 향했다. 스마트폰 화면 속의 파란색 점이 내가 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차창 밖의 풍경이 휙휙 지나가자 화면 속의 지도 역시 그에 맞춰 이동했다. 간단한 형태의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AR) 기술이다. 화면에는 다음 갈림길까지의 거리와 회전 방향, 최종 목적지에 도착할 예상시각 등이 표시돼 있었다. 스마트폰의 지도 기능 덕분에 머나먼 이국땅에서도 나의 존재를 확인받을 수 있었다.

여유롭게 운전하던 중 갑자기 위기가 찾아왔다. 앨러게이니 국유림을 지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한국 지리산국립공원 면적의 4.5배 이상인 거대한 숲속으로 들어가자 휴대폰 신호가 점점 약해지더니 급기야 ‘서비스 안 됨’ 메시지가 떴다. 휴대폰으로 들어오는 정보의 흐름이 끊기자 화면 속 지도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의 위치를 나타내는 파란색 점은 위도와 경도가 이루는 격자무늬만이 표시된 회색 화면 속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머리가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배터리가 방전되면 어떡하지? 다음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면 도착시간이 한참 지연될 텐데….’ 온갖 복잡한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어디쯤 가고 있는지 가늠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자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인적이 드문 빽빽한 숲속에서 문명과 나를 연결해주는 것은 희미한 GPS 신호뿐이었다. 이 신호는 지구로부터 2만200㎞ 떨어진 우주공간에서 맴도는 24대의 인공위성에 힘입은 것이다. 스마트폰에 내장된 GPS 수신기는 이들 중 가장 가까운 4대와 신호를 주고받으며 그 편차를 이용해 나의 위치를 계산해낸다. 화면의 배경을 이루는 지도정보는 통신사의 데이터망을 통해 전달된다. 휴대폰 기지국이 많은 서울시내를 다닐 때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수십㎞를 달려도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지역에서는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지구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은 나의(보다 정확하게는 내 휴대폰의) 위도와 경도를 알고 있었지만 정작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이었다. 그 순간 ‘나’라는 존재를 이 세상과 연결해주는 기술적 인프라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항상 수많은 기술적 산물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첫 행위부터 밤에 잠들기 전 마지막 행위까지 기술과 연관되지 않은 것이 단 하나라도 있는지 생각해보자. 각종 통신망을 통해 전달되는 뉴스를 보고 듣고, 큰 식품 공장에서 거대한 기계를 이용해 생산되고 교통 인프라를 통해 유통된 음식을 먹으며, 신용카드나 ○○페이 등 정보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화폐에 의존해 경제활동을 한다. 나를 둘러싼 크고 작은 공동체는 스마트폰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의 ‘단톡방’을 통해 유지된다. 이렇게 보면 21세기 초 현재 기술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것을 넘어 삶 자체를 각종 테크놀로지로 직조(織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우리가 영위하는 삶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물질문명의 씨줄과 날줄을 하나씩 풀어헤쳐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최형섭 교수최형섭 교수


스마트폰·GPS·신용카드·OO페이…

인간과 세상 ‘편리함’으로 연결시켜


변화·발전 거듭하는 기술 인프라 속

관련기사



노동의 역할·공동체 의미 되짚을 것

앞으로 이 연재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둘러싼 기술적 산물들이 이루고 있는 연결망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볼 것이다. 기술사학자 토머스 휴스(1923~2014)가 보여줬듯이 현대사회의 기술이 고립된 형태로 존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는 미국·영국·독일의 전력망 분석을 통해 소비자들이 경험하는 전기조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배후에 존재하는 송배전과 발전에 필요한 여러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잡한 기계장치들의 총합을 만들어내고 관리하며 유지·보수하는 전문가 집단의 노동이 하나의 기술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사회·기술의 복합체를 바라보는 시스템 관점이다.

전력망이라는 거대 기술 시스템은 극단적인 예일 수 있으나 이러한 관점은 비교적 단순한 기술에도 적용 가능하다. 예를 들어 흔히 볼 수 있는 종이컵을 생각해보자. 간단한 종이컵의 배후에는 상당한 규모의 종이컵 제조공장과 제지공장이 필요하다. 제지공장의 원료는 펄프, 즉 나무에서 온다. 원료를 수입하는 경우라면 펄프나 목재가 대형 컨테이너선에 실려왔을 것이다. 즉 단순한 종이컵 하나를 통해서도 세계 교역시장의 연결망을 조망해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종이컵은 고립된 형태로 이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커피 자동판매기의 일부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렇듯 테크놀로지는 한편으로는 서로 연관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사회와 연결돼 존재한다. 테크놀로지를 통해 세상을 본다는 것은 개별 사물의 배후에 존재하는 사물들의 연결망과 그것을 작동하게 하는 인간의 노동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다. 나아가 우리를 둘러싼 물질문명의 계보를 탐색해 따져보는 것은 결국 내가 누구인지, 내가 속해 있는 크고 작은 공동체나 국가란 무엇인지, 최종적으로는 인류란 무엇인지를 묻는 일이 된다.

앞으로의 연재에서는 시간의 긴 흐름 속에서 테크놀로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차근차근 탐색해나가려 한다. 우리의 삶 속에는 단순한 기술과 복잡한 기술, 작은 기술과 복잡한 기술, 오래된 기술과 최신의 기술, 국산 기술과 도입 기술이 뒤섞여 중층적으로 엮여 있다. 때로는 역사적인 접근이 유용하다. ‘이 물건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은 현재의 맥락이 과거의 그것과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유용한 창이 된다. 반대로 테크놀로지의 미래에 대한 담론(예를 들어 4차 산업혁명이나 스마트모빌리티)을 검토해봄으로써 현재 우리가 어떤 문제에 맞닥뜨리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공기(空氣)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기술에 대해서는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뒤집어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각종 기술적 재난 사건들은 그러한 노력이 부족했을 때 우리를 둘러싼 사물들이 인간을 배신할 수 있다는 점을 아프게 보여준다. 즉 이 연재는 사물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오가며 인류문명의 자리를 검토하는 작업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위기상황’은 어떻게 마무리됐는지 소개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휴대폰 신호가 끊어지자 물리적인 ‘나’는 울창한 국유림의 신비로운 경관을 지나고 있었으나 심리적인 ‘나’는 텅 비어 있는 휴대폰 화면 속 파란색 점이 돼 한동안 떠돌았다. 정신적 공황 상태로 한동안 달리자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이 나타나자 휴대폰 신호가 다시 미약하게나마 잡히기 시작했다. 통신사에서는 당연하게도 마을을 중심으로 기지국을 설치했을 것이다. 나는 마을 어귀에서 발견한 스웨덴 이민자 가족이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식당에서 제공하는 와이파이로 위치를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나오면서 늙은 식당 주인에게 부탁해 관광객용 지도를 한 부 얻었다. 최첨단 GPS 기술보다 오래된 종이 지도가 때로는 더 믿을 만하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최형섭 서울과기대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최형욱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