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삼학도

1115A31 만파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1935년 가수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 가사 일부다. 명곡에 언급될 정도로 삼학도(三鶴島)는 유달산과 더불어 목포 시민들과 애환을 함께 해온 곳이다. 애절한 가사만큼 섬 이름에 대해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또한 애달프다. 얘기는 이렇다. 유달산에서 무술을 연마하던 청년을 사모하던 세 여인이 기다리다 지쳐 죽어 학으로 환생해 청년 주위를 맴돌았다. 하지만 이를 알 리 없는 청년이 학을 향해 활을 쏘고 명중된 학들은 유달산 앞바다에 떨어져 죽었다. 얼마 뒤 그 자리에 작은 섬 3개가 솟아오르자 사람들이 이를 삼학도라 불렀다.


귀에 익은 노랫말 때문인지 지금은 낯설지 않은데 아쉽게도 삼학도를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유일하게 1872년 제작된 지도 ‘무안목포진지도(務安木浦鎭地圖)’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는 세종 때(1439년) 설치된 목포진의 수군기지 등이 그려져 있고 아래쪽에 삼학도 그림과 지명도 보인다. 군사요충지였던 목포진은 임진왜란은 물론 이후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에는 목포진 같은 군항을 운영하려면 땔나무를 제공할 장소가 필요했는데 주변에서 쉽게 나무를 구할 수 있는 삼학도가 제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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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연유로 삼학도는 목포진의 시지(柴地·땔나무 공급처)로 지정돼 국가가 관리하면서 일반인들은 접근이 금지됐다. 조선 말(1895년)에는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일본인이 섬 전체를 불법 매입한 사건(삼학도토지암매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인 소유였다가 광복이 되면서 다시 환수됐다. 그러나 얼마 안 돼 목포항 확장을 위한 매립 논의가 시작되고 1960년대 간척·연륙공사가 실행되면서 섬의 형태를 잃었다. 다행히 2004년부터 복원이 진행돼 주변에 물길이 만들어지는 등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2006년에는 경기도 파주에 있던 이난영의 묘가 이장하고 2013년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2017년 경북도민의 숲이 잇달아 들어서 평화·화합의 섬으로 변신하고 있다. 복원사업의 하나로 정부·목포시가 삼학도를 ‘평화의 숲’으로 만들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30억원을 들여 나무 숲과 평화통일기원 학습장, 휴식공간 등을 추가로 조성한다고 한다. 계획이 잘 마무리돼 삼학도가 옛 정취를 되찾길 바란다. /임석훈 논설위원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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