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에 사는 10억대 자산가 김모씨는 지난해 말 한 은행 프라이빗뱅커(PB)로부터 해외 부동산펀드 투자를 권유받고 자산의 일부인 2,000만원을 납입했다. 해외 금융상품에 투자한 적이 없어 망설였지만 연 6% 이상의 수익률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말에 투자를 결정했다. 더구나 사모펀드 형태로 단기간에 모집이 완료되는 상품이라 장기간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난 4월부터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수익률은 곤두박질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김씨는 “담당 PB가 위험성 고지보다는 상품 수익률과 인기만 강조해 고민할 시간이 부족한 상태에서 급하게 결정을 내린 게 화근이 됐다”고 토로했다.
금리연계형 파생결합증권(DLS)의 대규모 원금손실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DLS나 해외 부동산 펀드 등 사모펀드를 권유한 시중은행 PB들의 전문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최근 해외 부동산이나 파생상품을 소규모 자산가들로부터 모집하는 방식의 투자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정작 PB들은 상품의 위험성이나 수익구조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사모펀드 규모는 이날 현재 390조원으로 급성장했다. 국내 증시나 부동산의 투자 매력도가 떨어지면서 자산가들이 은행이나 증권사 PB센터를 통해 개미투자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해외 투자상품을 섞은 사모펀드로 급격히 몰리고 있어서다. A은행의 한 PB는 “자산가들은 국내 증시가 박스권에 갇혀 있는데다 경기도 좋지 않아 국내에서만 자산을 운용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해외 주식이나 채권 등 대체투자 상품으로 자산가들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사모펀드가 단기간에 마감되는 상품이다 보니 고객 입장에서 상품에 대해 충분한 고지 이후 투자를 결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B은행의 한 PB는 “인기가 많은 사모펀드 상품은 1시간도 안 돼 모집이 끝나기도 한다”면서 “은행 입장에서는 고객에게 자세한 상품설명을 하지 않아도 완판이 어렵지 않은 셈”이라고 전했다. 해외 투자상품으로 만든 사모펀드는 고객들이 접해본 적 없는 생소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은행 PB들이 권유만 해도 가입하는 사례가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C은행의 한 PB는 “해당 국가의 경제상황이 안정적이라는 피상적 이유만으로 사모펀드 투자를 결정하는 고객도 있다”고 실토했다. 그만큼 자산가들이 해외 주식이나 채권, 금리연계형 DLS 같은 복잡한 상품의 투자를 결정하는 데 허술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국내 시중은행 PB들의 낮은 전문성도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 대한 안목이나 투자철학으로 무장한 PB들은 드물고 내려오는 상품에 대해 유창하게 판매를 권유하는 스킬만 가진 PB들이 양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상품에 대한 잠재 위험성보다 최상의 시나리오 때 얻을 수 있는 수익률만 부각해 투자자를 현혹하는 셈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PB는 행원으로 입사한 뒤 과장급에서 선발된다”며 “사내교육을 이수하고 자격증만 갖추면 뽑히는 데 큰 무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은행 PB들은 고객 자산의 안정적인 운용에 도움이 될 어드바이스를 해야 하는데도 판매실적과 함께 잘 팔리는 상품은 문제 될 게 없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판매를 밀어붙이는 자동차 세일즈맨과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KB국민은행이나 신한·농협은행 등은 이번 DLS 손실 논란에서 자유로운데 외부에서 판매 제안을 받았지만 내부 ‘상품위원회’ 등이 해당 상품에 대해 스크린 작업을 한 후 불가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내부에서 충분히 원금손실 위험 가능성을 인지해 판매하지 않을 수 있는 장치가 있음에도 일부 은행은 자산관리(WM) 확대 등 무리한 경영으로 위험성에 눈을 감은 게 화를 부른 것이다.
조성목 한국FPSB 부회장은 “미국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불완전판매를 한 금융인을 해당 업권에서 쫓아낸다”면서 “우리도 금융사뿐 아니라 PB 개인의 불완전판매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PB 업무 규제가 더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은 2010년 ‘PB 업무 내부통제 모범규준’을 마련해 시행했지만 이후 PB 업무 관련 적발 및 조치는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권 전체에서 PB 경쟁이 과열되는 상황에서 금융당국 차원의 강도 높은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김기혁·이지윤기자 coldmet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