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극우 부총리가 쏜 '연정 붕괴' 화살에...伊정국 격랑

조기 총선 노린 살비니 부총리

'오성운동'과 결별에 총리 사임

새연정 등 다양한 시나리오 속

EU와 갈등 재연 우려 확산에

獨·佛 등 유럽 금융시장 요동

주세페 콘테(오른쪽) 이탈리아 총리가 20일(현지시간) 사임에 앞서 로마 상원 의사당에서 정국 관련 연설을 하는 가운데 마테오 살비니(가운데) 부총리 겸 내무장관이 묵주에 입을 맞추고 있다.         /로마=AP연합뉴스주세페 콘테(오른쪽) 이탈리아 총리가 20일(현지시간) 사임에 앞서 로마 상원 의사당에서 정국 관련 연설을 하는 가운데 마테오 살비니(가운데) 부총리 겸 내무장관이 묵주에 입을 맞추고 있다.   /로마=AP연합뉴스



극우 부총리가 쏘아 올린 ‘연정 붕괴’ 화살에 이탈리아 정국이 격랑으로 빠져들고 있다. 극우정당 ‘동맹’ 소속인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이 반체제정당 ‘오성운동’과의 연정 붕괴를 선언한 데 이어 주세페 콘테 총리가 20일(현지시간) 사임을 발표하고 ‘극우 포퓰리즘’ 연정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대혼돈 상태에 처하게 됐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를 앞두고 가뜩이나 흔들리고 있는 유럽 정치에 불확실성이 더해지면서 유럽 금융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콘테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임 이후 이탈리아 정치권에서는 새로운 연정 구성, 조기총선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부상하고 있다. 앞서 연정 붕괴를 선언한 살비니 부총리는 조기총선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높다. 과반 정당이 없는 상태에서 동맹의 지지율이 1위를 달리고 정당 간 역학구도상 어느 당도 새로운 연정을 구성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탈리아는 지난해 3월 총선에서 과반 정당이 나오지 않자 극우정당 동맹과 반체제정당인 오성운동이 연정을 구성했지만 지지기반과 정치철학이 달라 핵심 사안마다 부딪히는 모습을 보여왔다. 여기에 지난 8일 상원에서 동맹이 지지하는 리옹~토리노 간 고속철도(TAV) 건설사업 관련 표결에 오성운동이 반대표를 던지자 살비니 부총리는 “오성운동과의 정책적 견해차를 좁힐 방법이 없다”며 연정 붕괴를 선언한 바 있다.


현재 지지율로는 연정 붕괴가 곧바로 조기총선으로 이어질 경우 동맹이 다수당의 지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폴리티코 유럽판에 따르면 12일 기준 동맹의 지지율은 36%로 2위인 민주당(23%)과 13%포인트 격차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 지난해 6월 연정 출범 당시 지지율 1위였던 오성운동은 19%로 3위로 주저앉은 상태다.

하지만 그동안 앙숙이었던 오성운동과 중도좌파 성향의 민주당이 ‘반(反)동맹’을 외치며 돌연 밀착하며 물밑에서 연정 구성 협상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살비니가 예상하지 못한 돌발변수가 생긴 것이다. 양당에서 합의한 정책을 서면으로 기술하는 독일식 ‘연정계약서’가 필요하다는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두 당이 새 연정에 합의하면 동맹은 내각에서 퇴출되고 자연스럽게 살비니도 부총리 겸 내무장관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현지 정가에서는 ‘살비니가 지지율에 취한 나머지 자충수를 뒀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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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서는 어떤 방향으로 결론이 날지 가늠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오성운동과 민주당이 정책적 합의점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단 공은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에게로 넘어간 상태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당장 21일 오후부터 각 정당 대표들과 새로운 연정 구성을 위한 협의에 돌입할 예정이며, 논의가 무산되면 살비니의 의도대로 조기총선이 현실화하게 된다. 열쇠는 의회 해산권을 가진 마타렐라 대통령이 쥐고 있다. 콘테 총리도 이날 사임을 발표하면서 마타렐라 대통령이 앞으로 국가를 이끌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탈리아 정치가 ‘근대 역사상 가장 예측 불가능한 위기’에 빠지면서 유럽 금융시장은 출렁였다. 새로 출범하는 이탈리아 정부와 유럽연합(EU)이 재정적자 문제를 놓고 갈등을 재연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이탈리아의 이탤리40지수는 0.97% 하락했다. 2018년 말 기준 이탈리아의 공공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32%로 EU 집행위원회 권고 기준인 60%의 두 배가 넘는다. 유럽 정치불안 확산에 대한 우려로 영국 런던증시의 FTSE100지수도 0.9% 내렸으며 독일과 프랑스 증시도 각각 0.55%, 0.5% 떨어졌다.

국채시장도 출렁거렸다. 이탈리아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전날보다 20bp(1bp=0.01%포인트) 내린 1.342%로 2016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투자금이 독일 국채로 몰리자 독일 정부는 2050년에 만기 도래하는 30년 만기 초장기 국채 20억유로어치를 제로(0) 금리에 발행하기로 했다. 30년 동안 독일 국채를 보유해도 수익이 전혀 없지만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위험을 피하려는 투자 수요가 몰릴 것으로 전망된다.

노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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