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스타트업 오아시스가 올해 1분기부터 추진해왔던 200억 원 규모 투자 유치에 결국 실패했다. 벤처캐피털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오아시스 투자에 긍정적이던 주요 투자자들이 지난 7월 모두 의견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전달인 6월 신세계그룹의 SSG.COM이 새벽배송시장 진출을 선언하면서 판이 뒤집어진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그룹의 새벽배송시장 진출은 여러모로 의미하는 바가 컸다. 최근 신생 e커머스 업체들이 신선식품 영역까지 침범하면서 오프라인 기반 업체들은 수세에 몰려 있었다. 배송이 까다로운 신선식품은 e커머스가 절대 넘볼 수 없는 오프라인의 성역으로 인식됐지만, 2015년 마켓컬리가, 2018년 쿠팡이 새벽배송 서비스로 이 금단의 영역에 도전장을 던지고 또 승승장구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신세계그룹의 새벽배송시장 진출은 기존 유통공룡의 역(逆)도전이란 측면에서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런 배경 덕분에 신세계그룹의 새벽배송시장 진출은 최근 유통업계에서 가장 큰 이슈로 꼽히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계열사를 통해 소규모로 새벽배송 서비스를 진행하는 오프라인 기반 업체들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룹사 유통 부문 전체가 전사적으로 뛰어든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신세계그룹의 도전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새벽배송시장을 개척한 스타트업 마켓컬리와 로켓배송이라는 새로운 물류 패러다임을 제시한 쿠팡, 오프라인 신선식품 최고 경쟁력을 자랑하는 신세계그룹이 진검승부를 예고하면서 새벽배송시장이 끓어오르고 있다.
◆ 신세계 참전에 대한 엇갈린 평가
“신세계의 참전은 새벽배송시장 판을 키우는 기회가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새벽배송시장은 아직 성장 여력이 많이 남아있어요. 신세계 같은 빅 플레이어가 들어와 이슈를 만들면 소비자 관심도 더 늘어날 테고 또 신세계도 기존 고객의 새벽배송 서비스 이용을 권장할 테니 여러모로 시장 파이가 더 커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장이 멈춘 한계시장이 아니다 보니 경쟁자라기보단 함께 시장을 키워나가는 입장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소규모 새벽배송 업체 한 관계자의 말이다.
이미 새벽배송시장에 진출한 업체들은 규모에 따라 SSG.COM 등장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곳에선 ‘조심스러운’ 긍정적 평가가, 규모가 큰 곳에선 ‘시니컬한’ 부정적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전자 기업에선 ‘우리 기업가치엔 하등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란 뉘앙스의 표현을 고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후자 기업에선 ‘이제 곧 새벽배송시장도 불바다가 될 것’이라는 냉소적인 모습이 발견된다.
시장 관계자들은 후자 기업 평가에 좀 더 힘을 싣는 모습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장 관계자는 말한다. “투자 등 외부 수혈을 받아야 하는 작은 업체들로선 현재 시장 상황을 (외부에)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시장 참여자가 많아지면 어려워지는 건 당연하죠. 관건은 얼마나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느냐인데 이건 어느 기업에나 어려운 일이에요. 활용 가능한 자원이 제한적인 기업들은 특히 더 그렇죠. 큰 곳들이야 안 되면 ‘차별화된 가격 경쟁력’으로 버티기만 해도 중간은 가는데 작은 곳들은 그렇지 않잖습니까.”
◆ 유통 잘하는 대기업의 위협
신세계그룹의 등장이 기존 업체에 위협이 되는 건 이 기업이 ‘유통을 잘하는’ 대기업이기 때문이다. 신세계그룹은 기존 오프라인 유통공룡 중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트렌디한 곳으로 꼽힌다. 특히 새벽배송의 주된 콘텐츠인 신선식품 분야에서 유통업계 최고 경쟁력을 자랑한다.
새벽배송시장 트렌드 변화도 신세계그룹의 등장을 더욱 위협스럽게 만든다. 마켓컬리, 쿠팡 등 주요 기업들은 최근 새벽배송 취급 상품 카테고리를 신선식품 밖으로까지 확대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애완동물 사료 같은 비교적 신선식품에 가까운 상품 위주의 확대였지만, 2019년 7월 현재에는 생활용품, 가전까지 전방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이 새벽배송시장에 참전시킨 SSG.COM은 신세계그룹 통합 온라인몰로 그룹에 속한 모든 유통 계열사의 상품을 취급해 이 같은 트렌드에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새벽배송 서비스 품질도 우위에 있다. 주문 마감에서 배송 완료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6시간(자정 주문 마감, 6시까지 배달)으로 주요 경쟁업체인 마켓컬리와 쿠팡의 8시간, 7시간보다 앞선다. 게다가 그룹 차원에서 유통 사업을 영위 중이어서 상품 소싱력 측면에서도 훨씬 앞선 모습을 보인다. 사실상 신성 유통공룡으로 취급받는 쿠팡(현재 가장 넓은 새벽배송 서비스 지역을 자랑한다)을 제외하면 기존 새벽배송 업체들이 신세계그룹의 경쟁력을 따라잡기는 버거워 보인다.
◆ 새벽배송, 더욱 악화할 수도
더 큰 문제는 신세계그룹에 더해 다른 기업들 역시 줄줄이 새벽배송시장 참전을 준비 중이라는 점이다. 당장 7월과 8월 롯데홈쇼핑과 CJ ENM이 출격을 앞두고 있다.
기존 업체들 입장에선 특히 롯데홈쇼핑의 참여가 부담스럽다. 현재 예고된 것은 롯데홈쇼핑 하나뿐이지만 롯데그룹 역시 다양한 유통 채널을 운영 중인 만큼 향후 신세계그룹과 비슷한 수준으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룹 차원에서 ‘롯데쇼핑 e커머스사업본부’를 앞세워 전방위적인 공략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롯데그룹이 최근 유통사업 부문과 롯데로지스틱스를 연계한 물류 혁신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어 롯데그룹의 전방위적인 참전 역시 멀지 않아 보인다.
가장 최악의 상황은 새벽배송시장에서도 쿠팡-신세계-롯데 삼파전이 불붙는 것이다. 이들 업체 간 삼파전은 최근 다른 모습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찍어누르기 위해 벌이던 출혈 경쟁이 이제는 3자 체제를 공고히 하는 모습으로 변질되는 양상이다. 다른 캐시카우 채널을 가지고 있는 업체들이야 바짝 엎드려 버틸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신규 유통 업체들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