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늘의 경제소사] 세계사를 바꾼 '발트의 길'

1989년 동구권 붕괴 전주곡




1989년 8월23일 꽉 찬 여름의 해가 넘어갈 무렵 ‘발트의 길(The Baltic Way)’이 열렸다.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리투아니아 사람 200만명이 손에 손을 맞잡고 675㎞에 이르는 인간 띠를 형성한 것이다. 도시는 물론 낮에도 어두운 울창한 삼림지대까지 주요 도로를 연결한 인간 사슬은 한목소리로 외쳤다.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 목 놓아 부른 독립을 향한 함성과 노래는 국경을 넘어 세계로 퍼졌다. 스스로 묶은 인간 사슬은 쇠보다 강한 연대로 굳어져 마침내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따냈다. 얼마 안 지나 소련까지 무너졌다.


독립에의 갈망이 평화의 축제로 승화하고 세계인의 가슴에 파고든 ‘발트의 기적’은 거저 얻어지지 않았다. 먼저 역사에 대한 관심과 자각·분노가 일었다. 독일과 소련이 1939년 불가침조약을 맺으며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3국과 폴란드 동부를 소련이 갖는다는 비밀약정을 교환했다는 사실이 1988년 공개되며 여론이 들끓었다. 1989년 5월 발트 3국의 민족정당들은 통일조직인 ‘발트 총회’를 결성하고 요구조건을 내걸었다. ‘소련은 불법 점령을 인정하고 독립을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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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과 개방을 표방하던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정권은 ‘발트 사태에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며 무력 진압을 경고하고 나섰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도 소련을 돕기 위해 탱크를 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마침내 독소불가침조약 50주년인 8월29일, 3개국을 완전히 하나로 잇는 거대한 인간 사슬이 만들어졌다. 국민의 20% 이상이 거리로 나와 ‘자유’를 외치며 춤추고 노래를 불렀다. 자동차는 경적을 울리고 비행기는 날개를 뒤흔들었다. 성당에서는 종소리가 울렸다.

대규모 군대를 집결시켰던 소련은 세계로 중계되는 평화의 축제에 무력을 쓸 수 없었다. 발트의 독립이 정치와 외교를 넘어 도덕과 인간 기본권 문제라는 사실을 부각한 이날의 손잡기는 세계사를 바꿨다. ‘발트의 길’이 열리고 두 달 보름이 지나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 성탄절에는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가 처형되고 소련 대의원 총회는 독일과 비밀조약이 법적으로 무효라고 선언했다. 1991년 9월 소련은 무력 진압에 실패하고 3국은 차례로 독립을 따냈다. 강철같아 보이던 소련 연방도 끝내 무너트린 기적의 요인은 무엇일까. 염원의 정치화에 있다. 소망을 조직하고 행동하면 길이 생긴다. 총칼과 세월의 억압을 자유와 평화의 손잡기로 넘은 발트 3국에 박수를 보낸다. 우리의 소망은 언제쯤 이뤄지려나.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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