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중·러에 밀린 '기능한국'…제조업 근간 기계부문선 '노메달'

[한국, 기능올림픽 '3위' 추락]

글로벌 수준 상향평준화 되는데

'공고 출신' 낮은 사회적 평가로

국내대회 참여율 갈수록 줄어

젊은층에 산업 비전 제시 필요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대회 메카트로닉스 직종에 참가한 김주승·김영찬 선수가 경기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산업인력공단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대회 메카트로닉스 직종에 참가한 김주승·김영찬 선수가 경기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산업인력공단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한국의 성적은 40년 넘게 우승 아니면 준우승이었다. 지난 1973년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이래 2017년 대회까지 종합순위 2위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한국이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우승한 횟수만 19회에 이른다. 이 같은 국제기능올림픽에서 보여준 한국의 강세는 산업화 시대에는 기초 숙련기술의 발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대회에서 종합 3위에 그치며 이 기록이 무너졌다. 특히 기계 부문에서는 노메달에 그쳤다. 중국과 러시아의 공세 속에 선수단은 최선을 다했지만, 제조업의 근간인 기초기술과 이를 다루는 숙련된 기술자에 대한 낮은 사회적 평가의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기능올림픽에서 양성하는 숙련된 기술인에 대한 사회적 존중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기술인들이 산업환경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비전을 보여줘야 젊은 층이 이 분야로 유입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28일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한국은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에서 폐막한 제45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중국, 러시아에 이어 종합 3위를 차지했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가 발표한 평균점수, 평균 메달 점수, 총 메달 점수, 참가선수 총점 등 4개의 지표를 종합한 결과다. 위의 4개 지표를 대회 참가국 수 기준으로 점수화한 결과 한국은 264점을 얻어 272점을 획득한 중국, 265점을 획득한 러시아에 이어 종합 3위를 기록했다.

지난 시기 줄곧 ‘기능올림픽=1위’를 고수해온 한국이 3위를 한 것은 40여년 만에 처음이다. 한국은 2015년 브라질 상파울루 대회까지 5회 연속 종합우승을 차지했고 2017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대회에서는 중국에 이어 2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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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성적은 참가국이 늘어나며 우선 글로벌 수준이 상향 평준화된 점이 영향을 미쳤다. 홍제용 한국산업인력공단 글로벌숙련기술진흥원장은 “국가들의 실력이 과거와 달리 상향 평준화됐고 참가국 수도 크게 늘어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이 56개 전 직종에 출전하는 등 대규모 공세에 나섰고 개최국인 러시아의 공격적인 투자도 성적으로 이어졌다. 제조업 직종의 중국 강세로 우리나라는 CNC 밀링, 모바일로보틱스, 프로토타입모델링에서 은메달 획득에 그쳤다. 홍 원장은 “과거에 국제기능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던 중국이 본격적으로 참가하며 각종 대회에서 아시아권 1등을 하듯 기능대회에서도 역량을 발휘한다”며 “러시아도 개최국 어드밴티지를 활용해 홈 이점을 최대한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최근 국내 지방기능대회에 출전하는 선수가 줄었고 전반적 관심이 저조한 것이 큰 원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히 제조업의 근간이라 할 ‘기계 부문’에서 전혀 메달을 따내지 못한 게 가장 뼈아픈 부분으로 꼽힌다. 김양현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한국위원회 대표는 “전반적인 기술기능 종사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며 “학생들이 특성화고에 잘 오지 않고 들어와도 대학 진학을 하려고 한다”고 현실을 지적했다. 실제로 산업현장에 유입될 특성화고·마이스터고 등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의 정원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직업계고 학생들은 2005년 50만3,000명에서 2015년에는 33만7,000명으로 33%나 줄었다. 직업계고의 학생 비율도 전체의 1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47%에 비해 매우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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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부진한 기능올림픽 성적이 산업의 기술 수준 악화와 관계가 있다고 진단하는 것은 아직 섣부르다는 지적도 있다. 고혜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이나 러시아가 기능올림픽에서 성적을 내기 위해 국가적으로 선수촌 시스템을 강하게 운영하는 등 집중적으로 조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제조기술 직종에서 약세를 보였지만 정보통신기술(ICT) 직종을 중심으로 강세를 드러냈다”며 “산업구조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 지원이 예전에 비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오랜 기간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냈으니 이에 연연하기보다는 젊은 층이 기술인력에 진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더 필요하다고 분석한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숙련 기술인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와 사회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아울러 산업적 비전을 보여줘야 젊은 층이 기술인력으로 유입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주섭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1960년, 1970년대 산업화 당시 공고 출신을 천대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20년, 30년 전보다 기술·기능인에 대한 인식이 안 좋다”며 “공고 등 직업계고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해도 대졸자 못지않게 대접받는 정책 기조를 편다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직업계고에 가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고 선임연구위원은 “특성화고·마이스터고 출신 숙련 기술인들이 성장할 수 있는 산업적 비전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며 “일시적인 업황 악화로 산업현장을 빠져나간 이들이 돌아오려 해도 비전이 없어 주저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한국위원회 위원장인 김동만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전세계 강대국이 판치는 ‘소리없는 기술전쟁’의 한복판에서 한국이 진정한 일류국가의 면모를 보일지는 지금부터 결정될 것”이라며 “일등주의보다 일류주의를 더 지향해야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세종=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박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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