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자국 주도 중동 항해안전 구상인 ‘호르무즈 호위연합체’의 명칭을 ‘해양안전보장 이니셔티브(The Maritime Security Initiative)’로 슬그머니 바꿔 군사적 색채를 희석했다. 애초 군사행동을 연상시키는 ‘연합’이라는 명칭으로 각국에 참가를 요청했으나 참여 희망국이 늘지 않자 명칭을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도 이 구상을 변경된 명칭으로 부르면서 자국 선박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자위대 파견을 검토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8일 보도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9일 나가사키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중동에서의 해양안전보장 이니셔티브와 관련, 일본 선박의 항행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어떻게 하는 게 효과적일지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해양안보 이니셔티브’는 미국이 7월 19일 워싱턴에서 각국을 대상으로 개최한 설명회 때부터 쓰기 시작한 표현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7월 25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호위연합 구상을 해양안보 이니셔티브로 호칭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미군 최고책임자인 조지프 던포드 합참의장은 7월9일 일본을 비롯한 동맹국에 참가를 요청하면서 ‘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연합’은 유엔 안보리 결의를 거치지 않고 목적을 공유하는 국가들이 군사행동을 일으킬 때 쓰는 명칭이다. 미국에 대한 동시다발 테러로 촉발된 2001년 아프가니스탄 군사작전과 2003년 이라크 전쟁, 2014년 시리아 과격파조직 ‘이슬람국가(IS)’ 소탕작전 등에 연합이 결성됐었다.
미국은 호르무즈해협 호위 구상에서도 무력공격을 염두에 두고 연합체를 결성하려 했지만 지지가 확산하지 않자 해양안보 이니셔티브로 명칭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일본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8월5일 자민당이 개최한 외교·국방부회 합동회의에서 “미국은 현재 해양안보 이니셔티브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던포드 합참의장의 발언 이후로는 연합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무력행사가 수반되는 자위권 행사에는 장애가 많다. 호위연합체에 참가하면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이란을 자극할 우려도 있다. 9월 하순에 열릴 유엔총회에 맞춰 아베 총리가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도 있다.
참가국이 자발적으로 움직인다는 의미가 강한 ‘이니셔티브’라는 표현이면 일본 선박의 경계, 감시에 한해 자위대를 파견하는 경우에도 설명하기가 쉬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현재 방위성 설치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조사, 연구’나 자위대법에 입각한 ‘해상경비행동’을 중심으로 자위대 파견을 검토 중이라고 이 신문이 전했다. 파견지역도 무력충돌 위험이 있는 페르시아만이 아니라 해적대처부대가 있는 소말리아 아덴만 부근 밥엘만디브(Bab el Mandeb) 해협 근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