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29일 공직선거법 개정안(선거제 개편안)을 통과시키면서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됐다. 자유한국당은 ‘선거법 날치기’로 규정하고 장관 인사청문회 보이콧까지 검토하고 있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한국당의 ‘지연전술’에 정치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선거제 개편을 위해 한국당은 이제라도 정치협상에 적극 동참하라고 항변하고 있다.
정개특위 문턱을 넘은 선거제 개편안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일정상 법제사법위원회로 이관돼 오는 11월27일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다. 법사위원장이 한국당의 여상규 의원이라는 점에서 체계·자구 심사기간 90일을 다 채울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에 선거제 개편은 여야의 국회 파행과 협상이 반복되는 가운데 제3지대 정당 출현과 연말 예산 정국 등의 변수에 운명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 반발…정기국회 파행되나=한국당은 이날 표결 절차를 두고 ‘날치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당은 긴급 의총 직후 국회 로텐더홀에서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나경원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소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도 모자라서 정개특위 날치기를 강행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정개특위는 나 원내대표를 포함, 한국당의 다수 의원들이 진입해 고성을 지르는 등 한때 긴장감이 조성되기도 했다. 한국당은 앞으로 장외투쟁에 총력을 집중할 예정이다. 30일 부산 지역 집회에 이어 31일 또다시 광화문 집회를 예고했다. 극렬한 한국당의 반발로 정기국회까지 파행될 경우 20대 국회는 사실상 종료 수순을 밟고 최악의 국회로 남게 된다.
◇슈퍼예산 변수…정치협상 분수령=한국당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다는 점에서 고민이 깊다. 그동안 지연전술을 폈던 한국당은 선거제 개편안이 정개특위 문턱을 넘으면서 오히려 시간에 쫓기게 됐다. 이대로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될 경우 한국당은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한국당 내부에서도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한국당의 정개특위 소속 의원은 “여러 안을 놓고 정치협상에 들어가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홍영표 정개특위 위원장도 표결 이후 “이 안건이 최종 의결된 게 아니라 시간만 줄였을 뿐”이라며 “12월 정도에는 5당 합의가 이뤄져야 정상적으로 총선을 준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510조원 이상으로 책정된 예산이 정치협상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즉 ‘슈퍼예산’을 통과시켜야 하는 민주당과 선거제 개편에 유리한 요소를 포함시켜야 하는 한국당의 이해관계가 12월 초 예산처리 과정에서 맞아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제3지대 정당 출현…선거제 ‘판’ 흔드나=이날 정개특위 전체회의에서 김성식 바른미래당 의원은 “몸에 사리가 생길 만큼 한국당이 현란한 침대축구를 해왔다”며 “정개특위가 주어진 시한까지 정치개혁의 불씨를 살렸을 뿐”이라고 말했다. 반면 같은 당 지상욱 의원은 “힘으로 표결을 밀어붙이는 강공책을 택했다”며 표결 처리를 강하게 비판했다. 같은 당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민주평화당이나 분당된 대안정치연대도 마찬가지다. 꿈틀거리는 소수정당의 이합집산이 가시화할 경우 선거제 개편은 더욱 복잡한 이해관계에 놓이게 된다. 다만 제3지대 정당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높을 경우 비례의석에 대한 희망으로 선거제 개편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