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토요워치] '도구'서 '가치'로...명함 나를 표현하다

<명함의 진화>

비전 알리고 개성 살리고...'브랜딩' 수단으로

벤처·스타트업 명함 '정체성' 담아 제작

스마트스터디, 별명·대표 캐릭터 넣고

마이리얼트립 하늘빛에 공항코드 장식

대기업은 계열사마다 문구·색상 달라

'명함'에 QR코드까지 새겨 활용하기도

김민석 스마트스터디 대표 명함. 김 대표의 명함에는 ‘족장’이라는 자신의 별명과 새롭게 선보인 캐릭터 포키가 인쇄돼있다./사진제공=스마트스터디김민석 스마트스터디 대표 명함. 김 대표의 명함에는 ‘족장’이라는 자신의 별명과 새롭게 선보인 캐릭터 포키가 인쇄돼있다./사진제공=스마트스터디




스마트스터디 임직원들이 자신의 별명과 원하는 캐릭터를 담아 만든 명함 모습. 얼굴 캐리커쳐부터 기존 캐릭터까지 다양한 그래픽이 인상적이다./사진제공=스마트스터디스마트스터디 임직원들이 자신의 별명과 원하는 캐릭터를 담아 만든 명함 모습. 얼굴 캐리커쳐부터 기존 캐릭터까지 다양한 그래픽이 인상적이다./사진제공=스마트스터디


수년 전만 해도 명함은 단순히 소유주의 이름과 직장·연락처를 알리는 데 그쳤다. 하지만 이제는 명함 주인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속한 조직의 정체성과 비전은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이 같은 경향은 특정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생각과 감정이 종합적으로 갈무리된 이미지를 가리키는 ‘브랜딩’이 중요해지면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브랜드 가치를 새로 알려야 하는 스타트업(초기 창업기업)일수록 소속 임직원의 명함에 경영철학과 가치를 담아내려 힘을 쏟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기업이라고 명함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특유의 수직적인 위계 문화를 벗어던지고 ‘혁신’과 ‘개방’을 위한 수단으로 명함을 활용한다.


글로벌 콘텐츠 기업을 표방하는 스마트스터디의 경우 창업 초기부터 개인별 맞춤 명함을 선택해왔다. 이는 직급이 아닌 임직원이 선택한 별명으로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문화와 맞물리면서 ‘퍼스널브랜딩’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약 200명의 임직원들은 본명을 포함해 자신이 선택한 별명을 가지고 있다. 창업자인 김민석 대표 역시 ‘족장’이라는 별칭을 붙인 명함을 사용한다. 세로형 명함의 뒷면은 화려한 컬러 바탕에 핑크퐁을 비롯해 호기·포키 등 다양한 캐릭터를 담아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 회사의 정승원 마케팅실장은 닉네임이 ‘승승’이다. 그는 이색적인 명함을 기획한 이유에 대해 “비즈니스로 누군가를 만날 때 명함은 어색함을 없애주는 ‘아이스브레이킹 효과’가 있다”며 “독특한 명함으로 한 번이라도 독특한 기업 문화나 혁신성을 말하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맞춤형 명함’은 곧 스마트스터디가 엔터테인먼트 기업임을 보여줄 뿐 아니라 자유로운 사내문화까지 홍보할 수 있는 채널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각각의 구성원들이 회사 그 자체이자 브랜드이며 ‘회사가 임직원의 성장을 지원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푸른 하늘과 공항코드를 넣은 마이리얼트립의 명함./사진제공=마이리얼트립푸른 하늘과 공항코드를 넣은 마이리얼트립의 명함./사진제공=마이리얼트립


자유여행 플랫폼 마이리얼트립도 마찬가지다. 푸른 하늘을 떠올리게 하는 하늘색 바탕에 직원마다 자신이 가고 싶은 지역이나 도시의 공항코드를 넣어 회사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가고 싶은 직원은 ‘베니치아 마르코폴로 국제공항’을 의미하는 ‘VCE’를 새겨 넣는 방식이다. 김도아 이사는 “기업의 정체성과 여행 플랫폼의 감성을 최대치로 살리기 위해 디자이너들이 많이 고민했다”며 “하늘색의 회사 컬러와 직원들이 가고 싶은 지역의 공항코드를 명함에 녹여 동기부여를 한 것은 이러한 고민의 산물”이라고 소개했다.


‘1인 미디어’로 활동하는 유명 유튜버들도 개성 넘치는 명함으로 자신을 알린다. ‘외국인코리아(Den and Mandu)’를 운영하는 오대용씨는 투명한 필름 상단에 유튜브 화면 형식을 적용한 디자인을 인쇄해 명함을 받은 사람이 마치 그가 제작한 영상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그의 영어이름과 전화번호, 메일주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 ‘좋아요’ 표시까지 살뜰하게 담겨 있다. 오씨는 “크리에이티브라는 일의 특성을 드러낼 수 있다”며 “일상의 모든 것이 영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받는 사람들은 ‘와! 이렇게 명함을 만들었어’라며 신기해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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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독특한 개성보다 회사 가치를 부각하는 심플한 명함을 선택한 기업들도 적지 않다. 특히 대기업 계열사들은 그룹명 자체가 기업과 소속 임직원의 브랜드인 만큼 회사의 비전을 드러내는 데 힘을 쏟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LG그룹은 계열사별로 중요시하는 가치를 명함 오른쪽 위에 문구로 넣어 변화를 줬다. LG전자는 명함 앞면에 ‘고객과 함께하는 미래, 더 나은 삶을 향한 도전’이라는 문구를, 뒷면에 ‘Life’s Good’이라는 슬로건을 새겼다. LG디스플레이는 회사의 핵심 가치가 아닌 제품을 명함에 넣은 것이 특징이다. 앞면에는 LG디스플레이의 대표 액정표시장치(LCD) 제품인 IPS, 뒷면에는 LG디스플레이가 TV 제조사에 독점 공급하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로고를 넣었다.

삼성그룹에서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상상 이상의 디스플레이(Display Beyond Imagination)’이라는 문구를, 삼성물산이 ‘상상하고 실현하라, 글로벌 가치 창조 기업’이라는 문구를 명함 뒷면에 새겼다. 계열사 내에서 명함이 독특한 곳은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이다. 형광연두·주황·핑크·노랑 등의 색깔로 개성을 가진 임직원들을 표현한다. 제일기획 직원들은 명함을 만들 때 가장 일반적인 흰색 바탕을 포함해 총 다섯 컬러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명함에 QR코드를 넣어 활용하기도 한다. 삼성전기가 대표적이다. QR코드를 인식하면 홈페이지로 자동 연결된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부품회사인 만큼 고객사에 맞는 부품을 찾는 게 중요한데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고객사가 직접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어 영업에 유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브랜딩에 초점을 맞춘 명함일지라도 수백·수천장이 쌓이면 기억하기에 힘들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명함을 저장하고 관리하는 서비스가 등장한 요즘도 여전히 대면해서 받은 명함을 수기로 관리하는 노하우가 비즈니스맨들 사이에서 구전돼오는 것도 그 이유다. 특히 아날로그 감성의 중장년층일수록 ‘나만의 명함 관리법’을 보유한 경우가 많다. 25년간 근무한 대기업을 은퇴한 후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이관영(65)씨는 “매일 저녁 일과를 정리하면서 명함을 주고받은 이들의 인상이나 특징, 사업체의 강점 등을 간단히 메모해 보관한다”며 “반기에 한 번 정도는 업종별·회사별로 모은 명함을 정리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업무 특성상 많은 사람을 만나는 홍보·대관업무 관계자들도 명함 관리에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 대기업 대관팀에서 근무하는 박현우(43·가명) 차장은 “인물들의 특이사항을 엑셀로 별도로 적어 팀원끼리 공유한다”며 “법조·국회 출입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마주한 주요 공직자의 면면을 기록으로 남겨 업무에 활용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귀띔했다. /이수민·박효정기자 noenemy@sedaily.com

이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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