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신한금융, 준비 1년만에…건설사 독식하던 지하철공사 '깜짝 수주'

[리빌딩 파이낸스 2019] 금융, 미래를 경영하다

<2>글로벌 IB와 '맞짱' 준비하는 은행

계열사 협업으로 자금조달 시너지…사업 안정성 인정 받아

금융지원 '부수적 역할' 벗어나 독자 사업수주로 경쟁력 강화

우리, 印·베트남서 현지 딜 참여…KB·하나 등도 성과 잇따라

지난해 12월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 착공식’에서 조용병(오른쪽 세번째)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김현미(가운데) 국토교통부 장관, 이재명(오른쪽 두번째) 경기도지사와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연합뉴스지난해 12월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 착공식’에서 조용병(오른쪽 세번째)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김현미(가운데) 국토교통부 장관, 이재명(오른쪽 두번째) 경기도지사와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해 4월. 외부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금융권을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다. 신한금융이 국내의 내로라하는 건설사를 제치고 총 사업비만도 4조원에 가까운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 노선을 수주한 것이다. 당시 금융권에서는 “은행이 어떻게 건설사를 따돌리고 지하철 공사를 수주할 수 있느냐”며 사실확인에 분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까지는 건설사가 대형공사를 수주하면 은행은 차관단을 구성해 자금을 조달하는 ‘부수’적인 역할을 하는 데 머물렀다. 하지만 신한금융은 GTX A를 수주해 직접 전체 프로젝트를 통제할 수 있게 되는 ‘이변’을 만들었다. 선진국 투자은행(IB)들이 해온 업무를 신한금융이 처음 맡은 것이다.



신한금융은 이 같은 IB 업무 강화를 위해 내부적으로 치열하게 준비해왔다.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가계대출에 의존해서는 미래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 지난 2017년부터 그룹 내 계열사에 흩어져 있는 IB 부문을 매트릭스로 통합하고, 그 중심에 글로벌투자은행(GIB)을 신설했다. 은행이나 증권·캐피털·자산운용 등 계열사들은 유기적으로 협업해 대형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을 실시간 조달할 수 있게 했다. 신한금융은 또 초대형 민자 인프라 사업 수주경쟁에 뛰어든 만큼 GIB를 중심으로 엔지니어링사·건설사·설계사 등을 망라한 합동사무소를 꾸린 뒤 입찰을 준비해 성공했다. 특히 GTX A 프로젝트에서 신한은행은 대규모 자금공급, 신한금융투자는 금융주선, 신한자산운용은 펀드운용 등으로 역할을 나눠 자금조달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 현대건설 컨소시엄을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깜짝 선정된 요인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이 GIB 부문을 신설한 뒤 1년 만에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고객이 필요할 때 신한금융그룹 내 모든 계열사를 참여시켜 필요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원신한(One Shinhan)’의 핵심가치”라고 강조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하 40m 아래 도심 고속전철을 짓는 시도인 만큼 여러 난관이 있을 수 있지만, 신한금융은 파이낸싱이 가능해 공사가 약간 지연되더라도 다양한 방식의 금융조달을 통해 사업의 안정성을 유지해나갈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조 회장은 내부 임직원들에게 “큰 사업에 한번 부딪혀봐야 글로벌 은행 수준의 IB 체계를 완성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며 “(도전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금융의 GTA A 프로젝트 도전이 글로벌 시장에서 독자적으로 IB 딜을 추진하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신한금융뿐 아니라 KB·우리·KEB하나금융 등 주요 금융지주들도 선진 금융시장인 뉴욕과 런던 등에 IB 데스크를 두고 기회만 되면 IB 딜 도전에 나서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탈 예대마진 영업을 위해 금융지주들이 해외 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며 “IB 데스크는 현지 진출 은행 지점을 통해 인수금융 주선은 물론 해외 발전·인프라 또는 항공기금융 주선 등 현지 IB 딜을 따내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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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은 뉴욕, 런던, 싱가포르, 베트남 호찌민, 호주 시드니, 인도 뭄바이, 두바이,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 해외 8곳에 IB 데스크를 설치했다. 다른 국내 은행에 앞서 신흥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인도나 베트남 등에도 데스크를 뒀다. 이를 통해 지난해 3월에는 1,600만달러 규모의 인도 NTPC 발전사업 대출, 4월 6,600만달러 규모의 베트남 응이손 석탄화력발전소 딜에 참여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두바이 IB 데스크에서 아랍에미리트(UAE) 민간의료 기업인 NMC헬스케어에 총 1억2,000만달러(약 1,500억원) 규모의 신디케이트론 주선 작업을 마쳤다.

KB금융의 경우 홍콩에서 IB 딜을 통해 계열사 협업을 다졌다. 지난해 호주 최대 풍력발전사업자인 인피전에너지그룹 신디케이트론에 대해 골드만삭스와 공동 금융주간사 역할을 했는데 여기에는 국민은행·증권·자산운용·생명 등 다수의 계열사가 참여했다. 총 6억500만호주달러(약 5,000억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였다. 신한금융도 베트남에서 은행·금투 등이 협업해 딜을 따냈다. 지난해 5월 현지 1위 전력장비 그룹인 젤렉스의 회사채 4,000억베트남동(약 190억원) 발행 주선에 성공한 것이다.

하나은행은 올 초 싱가포르에 아시아영업본부를 신설하며 힘을 싣고 있다. 기존에는 IB 데스크에서 추진하는 딜이 국내 본부의 심사를 거쳐야 해 다소 오랜 시일이 걸렸지만 영업본부가 세워지면서 일부 대출에 대해서는 현지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됐다.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보다는 해외 딜 위주로 IB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것이 하나은행의 구상이다. 실제 1억파운드(약 1,500억원) 규모의 런던 템스강 실버타운 터널 건설 PF 등 올 상반기에만도 총 5건의 해외 인프라 PF를 주선했다. 이 밖에 NH농협은행도 해외 IB 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이대훈 농협은행장은 최근 호주 시드니를 찾아 현지 IB 시장을 조사했다. 해외 진출 후발주자인 농협은행 입장에서 IB 사업은 리테일 사업에 비해 인력과 투자비용이 적어 상대적으로 승산이 있다는 관측이다.

국내 금융그룹의 해외 인프라 투자 등 IB 딜이 은성수 금융위원장 취임과 함께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은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국내 기업들이 해외 인프라 수주를 위해 대규모 프로젝트파이낸싱을 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수출입은행이나 무역보험공사가 떠맡고 시중은행은 부실을 우려해 참여를 머뭇거리는 게 현실”이라며 “(은행들이)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해외로 나가 새로운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금융산업을 규제하기보다 글로벌 IB 딜 확대 등의 길을 터주는 육성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은행들의 IB 진출 지역이 일부 도시에 국한돼 국내 은행 간 출혈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IB 사업은 다소 리스크가 높은 만큼 다른 국내 은행의 전략을 따라 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현지 시장에서 글로벌 은행과의 경쟁도 벅찬데 국내 은행 간 내부 경쟁까지 벌이게 되면 IB 경쟁력 강화가 지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기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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