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푸에르토리코




1999년 4월 푸에르토리코 본섬에서 동남쪽으로 10㎞ 남짓 떨어진 비에케스섬에서 미군의 오폭으로 주민 1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여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부터 미국 해군이 운영해온 대규모 사격시설이 있었다. 수십년간 계속된 무차별 사격·폭격으로 섬이 황폐화되더니 급기야 사망사고까지 나자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시위가 격렬해지면서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사격장 무단침입 시 징역·벌금형에 처한다는 행정명령까지 내릴 정도였다.


하지만 항의가 이어지고 훈련장 폐쇄 소송 등이 잇따르자 미군은 2001년 6월 군사훈련 중단을 결정했다. 결국 사격 훈련장은 3년 뒤인 2004년 5월 영구 폐쇄됐다. 비에케스섬을 포함한 푸에르토리코를 미국이 접수한 때는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1898년 8월. 그 이전까지는 스페인이 약 400년간 식민지배했다. 1493년 11월 카리브해를 항해하던 콜럼버스가 섬에 상륙한 게 식민지화의 시작이었다. 콜럼버스는 이곳이 스페인 국왕의 영토임을 선언하고 ‘산후안바우티스타’라는 지명을 붙였다. 현 수도인 산후안의 지명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이후 섬 개발이 본격화되고 항만이 개설되면서 스페인어로 ‘부유한 항구’라는 의미의 푸에르토리코라고 불렀는데 이 이름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스페인에 이어 푸에르토리코를 점령한 미국은 한동안 군정을 실시했다. 1917년에는 준주(準州)로 편입해 주민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했다. 미국 자치령이 된 것은 1952년 자치헌법이 제정되면서다. 헌법에 따라 푸에르토리코는 완전한 내정자치권을 보장받는 대신 국방과 외교는 미국이 담당한다. 약 400만명인 현지 주민은 시민권이 있지만 대통령 선거나 상·하원의원 선거에서 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다만 하원의원 1명을 선출해 연방의회에 파견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허리케인 피해가 잦은 푸에르토리코를 향해 “지구 상에서 가장 부패한 곳 중 하나”라고 비난했다는 소식이다. 미국이 그간 허리케인 구호기금 등으로 수십억달러를 지원했는데 엉뚱한 곳으로 샜다는 것이다. 허리케인 피해에 대한 원조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경고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에 산후안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피해 현장에서 노력하는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고 대응했다. 인명이나 재산을 구하는 데 쓰이는 지원금까지 용처를 두고 얼굴을 붉히고 있으니 씁쓸하다./임석훈 논설위원

임석훈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