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은 저를 ‘자연인’ ‘자유인’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그런 삶 안에 저만의 루틴이 있어요.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지난 1일 끝난 한화 클래식 대회장에서 만난 김인경(31·한화큐셀·사진)은 평소 골프장 안에서만큼이나 골프장 밖 생활로도 유명한 선수다. 2012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나비스코 챔피언십(현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30㎝ 퍼트를 놓쳐 메이저대회 우승을 놓친 뒤 명상여행, 그림 그리기, 독서 등으로 트라우마를 이겨낸 ‘극복의 아이콘’이다. 2년 전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올린 메이저 첫 우승은 그래서 더 감동적이었다.
인도나 인도네시아 등으로 훌쩍 명상 여행을 떠나고 기타·피아노 연주를 즐기는가 하면 펜싱·양궁 등에도 관심을 두는 김인경을 주변 사람들은 자유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김인경은 “저만의 루틴을 따르는 것일 뿐”이라며 마냥 자유롭게만 사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요즘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명상도, 요가도 아닌 ‘골프’다. 5월 손목 부상을 입은 뒤로는 완벽한 회복을 위해 그 좋아하는 기타도 들지 않고 있다. 김인경은 “독서를 유일한 돌파구로 삼고 있다”고 했다. 요즘 읽고 있는 N H 클라인바움의 ‘죽은 시인의 사회’를 김인경은 “10대에 읽었을 때와 30대인 지금 읽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른 경험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5월 김인경은 또 다른 도전으로 주목받았다. 남자 US오픈 예선에 출전한 것이다. 81타로 탈락했고 손목은 더 안 좋아졌지만 김인경은 경험을 쌓고 새 친구들을 만든 것에 만족한다고 했다. 그는 “‘본선에 진출해서 남자들과 제대로 겨루겠다’는 생각으로 나갔던 게 아니다. 그저 안 해본 것을 해보고 싶었다”며 “집 앞(페블비치)에서 열리기에 그냥 준비 없이 나갔는데 다음에는 준비를 하고 나갈 것이다. 남자 브리티시 오픈(디오픈) 예선도 나가고 싶다”고 했다.
열아홉이던 2007년 LPGA 투어에 데뷔한 김인경은 통산 7승을 올렸다. 누적상금은 957만달러다. 1,000만달러 클럽 가입과 10승 목표에 대해 묻자 그는 “우승한다고 해서 막 행복해지고 그런 것도 아니더라. 열심히 할 때와 쉴 때의 밸런스를 맞추면서 좋아하는 운동을 오랫동안 하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이어 “우승만 바라보면서 살지 않고 골프를 연구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하니 우승 못해도 덜 좌절하게 되더라”고 돌아보며 “골프에는 완벽이란 게 없기 때문에 끝이 없을 것 같다. 선수로서 계속 발전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베테랑’이라는 수식어는 여전히 익숙지 않다고 했다.
김인경에게 골프는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통로와도 같다. 그는 “연령대가 다양한 친구가 많이 생긴 것도 골프 덕분이다. 골프 덕분에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골프를 치면서 소통하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질 기회도 얻는다”면서 “골프 선수가 아닌 사람들과 골프 치는 것도 좋은 점이 많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