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 일이다. 내로라하는 부동산 전문가들과 토론을 나눈 적이 있다. 주제는 강남에서 어느 단지가, 언제 ‘3.3㎡당 매매가 1억원 시대’를 여느냐였다. 그 주인공으로 삼성동과 압구정동 일대 아파트가 1순위 후보로 꼽혔다.
이유는 이렇다. 삼성동은 ‘현대차 GBC(글로벌비즈니스센터)’와 영동대로 지하도시 조성 등 굵직한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세계적 도시’로 변모한다는 점이다. 압구정동은 입지여건이 워낙 뛰어난데다 재건축 사업이 마무리되면 한강변 대규모 신축 단지로 탈바꿈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됐다. 단, 시기에 대해서는 당시 판단으로 주택시장이 약보합세로 돌아서는 등 변수가 많아 제법 시간이 걸린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시간이 흐른 지금 이 예측은 빗나가고 있다. 삼성동과 압구정동이 아닌 서초구에서 조만간 3.3㎡당 1억원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아리팍’으로 불리는 반포 아크로리버파크다. 아리팍 59㎡C 고층 한강뷰 매물이 최근 24억원에 거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면적 기준으로 옛 24평이다. 3.3㎡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1억원이 되는 셈이다. 아리팍은 지난해 가격 폭등기였던 8월 중순 59㎡가 3.3㎡당 1억원을 돌파한 24억5,000만원에 거래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결국 허위정보인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래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 매도 호가는 24억원을 넘어섰다.
그렇다면 아리팍이 1억원 시대 주인공으로 거론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정부가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내놓은 일련의 규제가 톡톡히 한몫을 했다. 아리팍은 2016년 입주한 한강변 신축 단지다. 잇단 부동산 대책은 강남권에 조망까지 뛰어난 새 아파트 몸값을 올려주고 있는데 바로 아리팍이 이 같은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까지 14차례의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았다. 대책마다 차이는 있지만 관통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강남권 정비사업을 옥죄고, 분양가를 통제하고, 대출과 세금 규제로 거래를 못 하게 하는 한편 서울 외곽에 대규모 아파트를 공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일관된 규제 대책이 되레 1억원 시대를 앞당기는 것이다.
일선 거래 현장을 보자. 요즘 대출 규제가 세다 보니 중산층도 은행 도움을 얻어 집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국 현금부자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데 이들은 ‘알짜지역’ 공급부족을 간파하고 이른바 돈 되는 일부 단지를 눈여겨보고 있다. 현금부자들 입장에서는 당장 이득이 없더라도 강남 신축을 사 놓으면 언젠간 돈이 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발표된 분양가상한제는 불쏘시개가 됐다. 서울 핵심지역의 공급이 더 줄 것으로 보고, 이른바 미래 안전자산에 베팅하는 수요를 더욱 자극하는 것이다. 3.3㎡당 1억원의 배경이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아직도 상한제가 공급부족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최근 상한제가 10월에 당장 시행되지 않을 것이라며 “공급 위축 등의 부작용이 있어 같이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낙연 국무총리 역시 지난달 26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상한제에 대해 “부동산 시장의 움직임을 봐 가면서 가장 좋은 시기에, 가장 좋은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할 것”이라고 ‘속도 조절’ 가능성을 내비쳤다. 정부 부처에서도 우려하는데 김 장관만 부작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요즘 부동산 카페에는 김 장관을 옹호하는 글이 많다. 이유는 김 장관 덕에 집값이 오르고 있어서다. 한 카페 회원은 “상한제가 시행되지 않을 경우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김 장관의 뚝심 덕에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글을 쓰기도 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김 장관은 주변 충고나 시장의 부작용을 외면하려 하고 있다. 서울 집값을 상승시킨 일등공신이 다름 아닌 김 장관이 돼가고 있는데 말이다. 부동산과의 전쟁을 진행 중인데도 고위 공직자들이 왜 집을 안 팔고, 강남 아파트를 선호할까. 자산가인 그들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ljb@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