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관점] ‘더 내고 더 받는’ 文 국민연금 공약 집착...멀어진 재정안정 ‘후세대에 짐’

■연금특위 '다수안'으로 포장된 文 공약

보험료율 12%로는 소득대체율 40% 유지도 버거운데

“대체율 45%로 올려도 기금 소진 7년 늦어진다” 호도

재정안정 위한 보험료 인상 여력 소진시켜 개혁 발목

퇴직금적립금 일부 국민연금 보험료 활용방안 고민을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국민연금개혁과 노후소득보장 특별위원회’가 지난달 30일 ‘다수안’ 등을 발표했다.

하지만 전체 위원 16명 중 5명이 지지했으니 다수안이라고 보기에는 함량 미달이다. 5명의 지지 위원 중 노동계 가입자 단체인 한국노총 위원을 뺀 3개 비사업장가입자 단체(대한은퇴자협회·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한국여성단체연합)와 청년단체(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의 대표성에도 의문이 생긴다.


어쨌든 다수안은 가입기간 낸 보험료 부과 월 소득의 몇 %를 국민연금으로 받느냐를 나타내는 ‘소득대체율’이 2028년까지 40%(40년 가입자 기준)로 떨어지게 돼 있는데 이를 45%로 되돌리는 대신 현재 9%인 보험료율을 10년 동안 12%로 3%포인트 올리자는 게 골자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4개 안 중 소득대체율 45%, 보험료율 12%(2021년 10%, 2026년 11%, 2031년 12%) 인상안과 판박이다.

둘 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연금 대선공약 이행을 위한 각론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특위가 단일안 도출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많지만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는 대선공약 이행안을 처음으로 ‘다수안’으로 포장하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국민연금제도 개선안을 도출하는 법적 기구인 복지부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에서 얻지 못한 타이틀이자 ‘경사노위 연금특위’를 띄운 이유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박능후 복지부 장관으로부터 ‘국민연금 종합계획안’ 초안에 대한 중간보고를 받고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퇴짜를 놓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국민연금 개혁과 노후소득보장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장지연 위원장(뒷모습) 등 위원들이 지난달 30일 그동안의 논의 결과를 정리·발표하기에 앞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국민연금 개혁과 노후소득보장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장지연 위원장(뒷모습) 등 위원들이 지난달 30일 그동안의 논의 결과를 정리·발표하기에 앞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독일 국민들은 소득의 19% 안팎을 보험료로 내고 가입기간 평균소득의 48%(2030년 40%대 초반으로 하향)를 연금으로 받는다. 평균 가입기간이 40년 안팎인데 평균 연금액은 우리 돈으로 월 120만원 수준이다. 그런데 우리가 소득의 12%를 보험료로 내고 가입기간 평균소득의 45%를 연금으로 받는 게 지속가능할까.

캐나다는 가입기간 평균소득의 24%를 국민연금으로 받는 게 미흡하다며 소득대체율을 33.3%로 높이는 대신 보험료율을 9.9%에서 단번에 11.9%로 올리기로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 9%를 내고 올해 평균소득의 44.5%를 받는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현행 캐나다 국민연금보다 덜 내고 두 배가량 받는 매우 후한 연금이다. 당연히 지속가능성이 없다. 그런데도 지나치게 많은 연금을 주는 공무원·군인·사학연금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만 부각되는 실정이다.

반면 경영계를 대변하는 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의가 지지한 현행유지안(소득대체율 40%, 보험료율 9%)은 ‘소수안’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다수안은 한국전쟁 이후 출생률이 현저하게 상승한, 그래서 자녀 등 미래 세대에게 큰 부담을 줄 베이비붐세대(1955~1963년생)를 포함한 ‘국민연금 기득권자’들이 꼭 해결해야 할 국민연금 재정안정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저버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보험료율 3%포인트 인상은 사실상 소득대체율 5%포인트 인상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내고 그대로 또는 덜 받는’ 국민연금 재정안정화 방안은 국민적 저항이 클 것이라는 이유로 내동댕이치고 기득권 확대와 ‘더 내고 더 받는’ 대선공약에 집착한 안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다수안은) 현행 국민연금제도의 재정불균형을 사실상 방치할 뿐만 아니라 재정안정화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보험료율 인상 여력을 소득대체율 인상을 위해 사용해버려 향후 재정안정화 논의를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도 “현행 국민연금제도나 정부의 개편안은 엄청난 연금지급 부담을 후세대에 떠넘길 뿐”이라며 “노후소득보장 강화를 명분으로 소득대체율 인상을 추진하는 것은 고용노동·복지정책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국민연금에 떠넘기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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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위와 정부는 다수안이 국민연금기금 소진연도를 2057년에서 2064년으로 7년 늦추는 재정안정화 효과를 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보험료율 인상 효과는 재정에 바로 나타나지만 소득대체율 인상에 따른 추가 지출은 가입자 은퇴 이후 나타난다. 그래서 기금 소진연도만 놓고 재정안정화 효과를 평가하면 착시효과에 빠질 수 있다. 통계청의 장래 인구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평균 기대수명은 2067년 90.1세. 따라서 평균 25년간 연금을 받는다고 가정하고 기금 재정을 추계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20년간 받는다는 가정 아래 재정추계를 해 미래 재정불안 요인을 축소하는 데 급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연금소진 이후 연금지급액과 연금기금 수지, 가입자들의 보험료를 얼마나 올려야 연금을 지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추계자료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비사업장가입자 단체 중 소상공인연합회의 ‘진짜 소수안’보다 도덕적으로 훨씬 못하다. 연합회는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하고 보험료율을 당장 10%로 올려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높이자는 안을 내놓았다.



소득대체율을 45%로 올리더라도 노후빈곤이 우려되는 소득 하위계층 25년 가입자의 월 연금액 인상폭은 2만~7만원으로 월소득 250만원인 평균소득자(7만8,000원), 소득 상위계층(8만~18만원)보다 작다. 또 현재의 빈곤 노인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앞서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는 미래 세대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보험료율을 17.2%까지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다만 감당할 수 있는 보험료의 마지노선(상한선)을 13.5%로 보고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나머지 3.7%는 평균 기대여명과 연금 수급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매달 받는 연금을 깎는 ‘자동안정화 장치(소득대체율은 유지)’를 도입해 풀어가자고 정부에 건의했다. 스웨덴·핀란드·독일·일본 등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는데 핀란드의 경우 국민 평균 기대여명이 늘어나는 만큼 기대여명계수(2030년 0.909, 2065년 0.860)를 곱한 연금을 받는다.

반면 우리나라 국민·공무원연금 등은 전체 수급자들이 당초 예상보다 5년을 더 살든, 10년을 더 살든 매달 받는 연금액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평균수명과 연금 수급기간이 늘어날수록 수급자에게는 이득이지만 연금기금 재정에는 엄청난 부담이 된다. 보험료의 대폭 인상이 어렵기 때문에 우리도 이런 국제적 추세에 부응할 필요가 있다.

통계청이 올해 3월 발표한 ‘2017~2067년 장래인구 특별추계’에 따르면 총인구가 기존 추계보다 3년 빠른 2029년부터 감소한다. 반면 연금수급자 수를 결정하는 노인인구 비중이 40%에 육박하는 시점이 2051년으로 7년 빨라진다. 15~64세 생산연령인구는 50년 뒤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 생산연령인구 100명이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의 비율을 뜻하는 노년부양비가 2017년 18.8명에서 2067년 102.4명으로 5.5배 뛴다. 일해서 보험료를 낼 사람은 줄어들고 연금을 받아야 할 사람이 급증하면 국민연금기금이 더 빨리 바닥나거나 소진 후 부과 방식으로 전환했을 때 미래 세대가 져야 할 보험료율(4차 재정계산 2060년 26.8%, 2088년 28.8%)도 30%를 웃돌 가능성이 크다.

경영계가 제안한 퇴직금적립금 또는 퇴직연금 활용방안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노후에 대비해 근로자와 사용자에게 강제적으로 적립하게 하는 공적연금 보험료의 심리적 마지노선은 소득의 20% 안팎이라고 한다. 현재 사용자와 근로자는 국민연금 보험료 9%, 퇴직금적립금 또는 퇴직연금보험료로 부담하는 재직기간 1년당 30일분 평균임금(보험료율 기준 8.3%)을 합해 월 소득의 17.3%를 노후 내지 퇴직 후에 대비해 적립한다. 심리적 마지노선과의 차이가 3%포인트 수준에 불과하다.

그래서 퇴직금적립금 또는 퇴직연금보험료 중 일부를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국민연금 보험료로 돌리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퇴직금 개념이 없는 나라가 많은 만큼 8.3% 중 2%포인트라도 국민연금 재원으로 돌리면 국민연금 재정안정화 효과도 크고 사용자와 근로자의 보험료 인상 부담도 덜 수 있다. 노동계에서 반대하고 있지만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보험료 인상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금융사·자산운용사의 배만 불려준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방안과 함께 내놓는다면 근로자 측의 불이익과 불만을 줄일 수 있다.

국민연금 개혁안은 국회로 공이 넘어갔다. 하지만 사사건건 대립하는 여야, 더구나 내년 총선을 앞둔 여야가 합의안을 처리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다수안이라며 국민연금기금의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방안을 강행 처리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안이라면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는 게 낫다. jaelim@sedaily.com

임웅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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