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간 검사로 근무하면서 많은 사건을 수사하고 처리해왔다. 그런데 ‘그 사건’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불법인데 왜 처벌할 수 없다는 건지. 수긍되지 않는 심정을 안고 항소, 상고했지만 결국 그 사건은 대법원에서 무죄로 확정됐다.
3~4년 전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장으로 근무하면서 한 고민이다. 그때 품었던 의문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고 있다. 정말 입법자는 이런 경우에는 처벌하지 말자는 생각이었을까.
내용은 이렇다. 당시 우리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전국적 조직을 갖춘 단체장 선거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다. 여러 명의 후보가 나섰고 후보들 간 경쟁이 엄청났다. 100만여명의 회원 규모, 다수의 산하 기업체 운영 등으로 그 단체장의 권한은 막강하기로 소문나 있었다.
후보자 간 경쟁이 치열한 데 비해 선거인은 300여명으로 많지 않았다. 금품 살포의 유혹이 자라날 수 있는 구조였다. 그 후보는 상당히 많은 돈을 뿌렸다. 우리는 그 사실을 계좌추적과 압수수색, 관련자 조사를 통해 밝혀냈다.
그러나 그 선거는 돈을 뿌려도 처벌할 수 없는 이상한 선거였다. 우리나라는 공직 선거나 조합장 선거 등 특정 선거를 제외한 선거에 대해서는 금품제공을 처벌하는 규정을 두지 않는다.
누가 보더라도 죄질이 나쁜 행위를 아무 잘못도 아닌 것처럼 넘길 수는 없었다. 고민하다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했다. 위계로 그 단체 선관위의 공정한 선거관리 업무를 방해했다는 취지였다. 궁여지책이었고 결과적으로도 무죄였다. 법률가로서 그 결론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금도 노조위원장 선거, 각종 협회장 선거, 문화·체육 단체장 선거 등 여러 선거에서 금품 살포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현재 공직 선거의 경우 유권자에게 50만원만 제공해도 구속된다. 그런데 그보다 수십배, 수백배 많은 돈을 제공한 사람을 처벌하지 않는 것이 과연 정의에 합당한지 의문이다.
선거가 부패의 근원이라고들 한다. 당선되기 위해 유권자에게 돈을 뿌리면 당선된 후에는 그 돈을 회수하기 위해 자리와 이권을 팔게 된다는 것이다. 수많은 자치단체장들이 이러한 전철을 밟고 당선무효가 됐다.
물론 법이 만능은 아니다. 사람을 처벌하는 형사법 적용은 가급적 최소화하는 게 맞을 것이다. 순수한 민간 영역인 학교 동문회장 선거나 각종 동호회장 선거에까지 법의 잣대를 들이대자는 것이 아니다.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등 공공성이 높은 단체를 순수한 민간단체와 같이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선거에 나선 후보자가 돈으로 표를 사려고 했다면 그 반칙행위는 처벌받아야 한다. 그것이 상식이 통하는 사회, 합리적 정의가 통하는 사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