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공감] 다음 명절땐 꼭 내려갈게요




언제부턴가 멋지게 사는 거보단 먹고사는 게 중요해졌어. 힘든데 너무 힘든데 힘들다 말하기가 힘든 세상이라 더 힘들어. 내 삶의 빛은 보이지 않고 빚이 쌓이네. 내 일이 좋았던 적 언제였나. 내일이 기다려진 적 언제였나. 내 삶을 사는 건지 아님 누군가 내 삶을 산 건지. 참했던 어린 시절 언제였나. 비참해진 나의 시간 언제 왔나. 웃어야 해. 웃어야 해. 웃어야 울음을 감출 수 있네. 참아야 해. 참아야 해. 참아야 아픔을 가릴 수 있네. 저기요. 무슨 일 하세요. 그냥 회사 다녀요. 무슨 일 하세요. 저도 그냥 회사 다녀요. (양경수,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 2016년 오우아 펴냄)

한 신입사원이 양복도 벗지 못한 채 휴대폰을 쥐고 잠들어 있다. 꿈을 꾸는지 낮의 통화를 곱씹는지, 널브러진 젊은이의 머리 위로 이런 말이 흘러간다. “어머니, 잘 지내시죠? 전화 자주 못 드려서 죄송해요. 신입이라 업무가 많아서… . 회사분들은 너무 좋고 잘해주십니다. 다음 연휴 땐 꼭 내려갈게요! 건강 잘 챙기시고요.”



2016년 ‘일하기싫어증’이라는 신조어를 유행시켰던 양경수 작가의 책 속 한 장면이다. 양 작가는 회사문화에 대한 통렬한 풍자로 화제를 모았지만, 그의 책 속엔 자책하고 휘청거리고 남들 다 쉬는 연휴에도 집에 못 가는 젊은 직장인들의 아픔이 숨은그림찾기처럼 박혀 있다. 흔히 요즘 직장인들은 ‘워라밸’을 목숨처럼 여기고, 손해 보는 건 절대 못 참는 개인주의자라고들 하지만, 현실에서 그보다 많은 건 ‘힘든 데도 힘들다 말하기 힘든 세상’에서 부모님께 ‘회사분들은 다 좋고 잘해주십니다’라는 슬픈 거짓말을 하는 이들일지 모른다.


이번 추석 때는 모두 집에 갈 수 있기를. 그리고 친지들이 모인 자리에서 “요새 넌 뭐하냐?”는 질문에 누군가 고단한 얼굴로 “그냥 회사 다녀요”라며 고개 숙이거든, ‘쯧쯧’ 혀를 차기보다는 “고생 많다”며 등 두드려주는 너그러운 어른이 더 많아지기를.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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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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