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전쯤 됐다. 헤지펀드 업계의 대부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회장이 자신의 링크드인에 ‘세 가지 큰 이슈와 1930년대와의 유사성’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가 말하는 이슈란 △중앙은행의 경기 진작 한계 △경제적·정치적 양극화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다. 이런 상황이 지난 1930년대와 유사하고 경기침체가 더해질 경우 1930년대 후반과 같은 무질서한 시대로 갈 수 있다는 뜻이다. 1929년 발생한 대공황은 세계 경제를 휩쓸며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정글의 귀환’의 저자인 로버트 케이건 미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세계의 질서는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라며 “세계가 꽤 오랫동안 자유질서의 거품(bubble) 속에서 살아왔고 이는 역사적으로 볼 때 천국에 가까웠다”고 했다. 달리오 회장의 분석과 큰 틀에서 비슷하다. 세계가 다시 야만의 시대로 가고 있고 이것이 국제정치를 넘어 경제 분야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보면 쉽게 이해된다.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탈퇴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군비경쟁에 나서고 있다. 특히 중국과는 경제를 넘어 아시아태평양 지역 패권을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다. 주요2개국(G2)으로 불리는 중국이지만 국가비상사태 선포까지 거론하는 트럼프의 벼랑 끝 전술에 끌려다니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적과 친구를 가리지 않는다. 동맹에도 수시로 방위비 증액과 미국산 무기와 농산물 구매 같은 청구서를 내민다. 자유무역의 전도사였던 미국이 무역적자를 이유로 세계무역기구(WTO)를 탈퇴하겠다고 할 정도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뼛속까지 약육강식의 논리가 새겨진 인물이다. 그는 지난달 뉴욕에서 열린 대통령 선거 자금모금 행사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를 도와 브루클린에서 114달러13센트의 월세를 수금한 것보다 한국에서 방위비로 10억달러를 받아내는 게 더 쉬웠다고 했다. 국내 언론은 외교적 결례라는 점만 부각했지만 정작 기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말에 놀랐다. “나를 믿어라. 이 13센트가 매우 중요하다(believe me those 13 cents were very important).” 월세도 월세지만 마지막 1센트까지 받아내는 게 핵심이라는 얘기다. 그가 미국 대통령 자리에 있는 한 이성은 갈수록 멀어지고 정글은 더 가까워질 것이다.
제2, 제3의 트럼프도 계속 나온다. ‘영국의 트럼프’로 불리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3개월 연기법안이 하원을 통과했음에도 다음달 말 EU 탈퇴 계획을 굽히지 않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 밖에도 프랑스의 국민연합과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 이탈리아의 북부동맹 같은 극우파가 세를 불리는 중이다. 브라질에서는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마이웨이(My way)’를 걷고 있다. 사례가 하나뿐이라면 예외로 치부할 수 있지만 두 개, 세 개가 쌓이면 흐름이 된다.
문제는 우리다. 한국은 그동안 미국이 주도한 세계 질서에서 혜택을 누렸다. 적어도 무역만큼은 그랬다. 1953년 67달러(GNI)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3만달러를 넘어섰다. 모두 수출 덕이다.
하지만 세계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자유무역 기조는 쇠퇴하고 각국이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기준으로는 상위권이지만 동북아에서는 꼴찌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한 수 아래로 보는 러시아(1조6,575억달러)도 우리보다 국내총생산(GDP)이 많다. 중국은 우리의 여덟 배, 일본은 세 배를 웃돈다.
최후의 수단인 군사력도 그렇다. 러·중·일이 우리를 크게 앞선다.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은 군사력 측면에서 우리와 비교가 안 된다.
앞서 달리오 회장은 이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금에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정부는 야만의 시대에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11월 최종 종료 전까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이 정부의 답안을 짐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