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회복으로 침체의 터널에서 가까스로 탈출하려는 조선업계가 노동조합 파업 리스크에 발목이 잡혔다. 특히 글로벌 발주량 자체가 줄어들어 수주회복이 실적회복으로 아직은 이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노조의 파업이 자칫 수주예정 물량마저도 걷어찰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5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중앙노동위원회는 16일 현대미포조선 노조가 신청한 쟁의조정 중지 신청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중노위가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게 되면 현대미포조선 노조는 합법적인 파업권을 획득한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보통 중노위가 2차 신청은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린다”며 “현대미포조선 노조가 실제 파업을 할 경우 22년 연속 무분규 교섭 기록에 마침표가 찍히게 된다”고 말했다. 앞서 현대미포조선 노조가 지난 3~5일 찬반투표를 벌인 결과 1,316명이 참여해 찬성 1,268표(96.35%)로 가결됐다. 현대미포조선 노조는 올해 교섭에서 기본급 12만3,867원(호봉승급분 별도) 인상, 성과급 최소 250% 지급, 연차별 임금격차 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미중 무역분쟁에 발주량 자체가 줄어 연초 목표량도 채우기 힘든 상황”이라며 “노조 기대에 맞추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조선업계의 올 8월 실적은 글로벌 선박 발주의 74%를 수주하고 8월까지 수주금액이 중국을 제쳤지만 글로벌 발주량 자체가 올 들어 43%나 줄었다. 특히 현대중공업그룹 조선 3개사(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는 수주실적이 40.5% 급감하며 연간 수주목표인 159억달러의 31.4%에 그치고 있다.
수주 1위의 착각 속에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현대삼호중공업 노조는 파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달 21일 첫 파업에 돌입한 현대중공업 노조는 대우조선해양 인수 반대와 기본급 12만3,526원 인상 등을 요구하며 추석 연휴 이후 강도 높은 파업을 예고했다. 여기다 오는 11월 노조 집행부 선거를 앞두고 계파 간 선명성 경쟁이 벌어지며 파업기간도 길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마찬가지로 임단협과 합병 반대를 동시에 요구하는 대우조선해양 노조도 추석 연휴 이후 파업 강도를 한층 높일 계획이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물류파업이나 게릴라파업 등을 예고하고 있다. 이와 함께 노조는 기업결합심사를 막기 위한 해외 투쟁은 물론 금융당국 등과 담판도 예고했다. 현대삼호중공업 노조도 파업 전선에 동참 중이다. 노조는 기본급 12만3,526원 인상과 성과급 최소 250% 지급 등을 요구하며 현대중공업 노조와 대우조선해양 인수 등 문제에 입장을 같이하고 있다.
조선업계 전문가들은 노조가 ‘수주회복=실적회복’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8월 누적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1,330만CGT(표준화물 환산톤수)로 1년 전보다 43% 감소했다. 금액기준으로는 32% 줄어든 수준이다. 8월 한 달만을 대상으로 분석하면 전년 대비 58% 급감했다. 조선 3사가 지난달까지 체결한 선박 건조 계약실적은 모두 121억8,900만달러로 지난해 대비 21.3% 감소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나 초대형 유조선 신규 발주가 늘어나는 등 업황이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물량 자체는 늘지 않았다”며 “수익률로 따지면 1~2%밖에 남지 않는 등 여전히 경영환경이 불투명한데 노조가 고통분담과 위기극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