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고 외부환경에 영향을 받는 기존 박막 분석 방식의 한계를 국내 기술력으로 극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공정에서의 소재·장비 국산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화학기상증착 장비 내부에서 웨이퍼 위에 박막이 형성되는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측정·분석할 수 있는 ‘화학증착소재 실시간 증착막 측정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고온에너지시스템그룹 허훈(사진) 박사는 “앞으로 반도체 박막 증착 과정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공정 중 박막 증착 공정은 실리콘 웨이퍼 위에 얇은 층 형태의 박막을 단계적으로 겹겹이 쌓아가는 핵심공정이다. 박막은 반도체 회로 간의 구분과 연결·보호 역할을 담당하며 박막을 최대한 얇고 균일하게 형성할수록 반도체 품질이 향상된다. 박막의 두께가 1㎛(100만분의1m) 이하로 매우 얇아 이를 구현하는 것은 기술적 난도가 높은 공정이고 이 때문에 박막 형성 상태를 수시로 측정하고 확인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허 박사는 “기존에는 박막이 제대로 증착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해당 장비에서 박막을 꺼낸 뒤 별도의 분석기기로 검사해야 했다”며 “그 과정에서 박막이 대기 중에 존재하는 산소나 수분과의 접촉으로 변질돼 분석 결과의 신뢰성이 훼손될 수 있고 박막에 불량이 발생한 경우 원인 규명이 쉽지 않았다”고 연구배경을 설명했다.
허 박사 등 연구팀은 화학기상증착 장비 내부에 박막 소재의 증착 과정을 측정·분석할 수 있는 용기 내(In-situ) 라만 분광(Raman spectroscopy) 장치를 설치해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했다. 이 장치를 이용하면 라만 효과에 의해 발생하는 특수한 빛의 배열인 ‘라만 스펙트럼’을 활용해 장비 내부에서 바로 박막 소재의 농도나 결정구조·결정성 등 다양한 물성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또 화학 증착에 필요한 화합물 및 반응가스, 박막 성장 온도나 시간 등 여러 변수를 측정·분석해 공정도 최적화할 수 있다.
허 박사 연구팀은 한 걸음 더 나가 박막 물성 분석 결과를 기반으로 유전율(permittivity)을 유추할 수 있는 분석기법도 개발했다. 유전율이란 전기장을 가했을 때 전기적 성질을 띤 분자들이 정렬해 물체가 전기를 띠는 현상이 발생하는 정도를 말한다. 유전율 분석 결과는 고집적화와 고속화 구현에 유리한 저유전율 특성을 지닌 반도체 물질을 개발하는 데 활용된다.
연구팀은 구축한 시스템을 통해 저유전율 반도체 물질을 증착시켜 그 과정과 처리 조건에 따른 물성 변화를 라만 스펙트럼으로 실시간 분석하는 데 성공해 신규 박막 소재의 개발 가능성을 높였다.
허 박사는 “이번 연구성과는 반도체뿐 아니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재, 2차전지 또는 태양전지용 전극소재 등 다양한 분야에도 활용이 가능하다”며 “연구개발 과제에 착수한 지 3년 만에 낸 성과로 지난 6월 시스템 개발을 완료하고 현재 반도체 소재 기업들과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천안=박희윤기자 hy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