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기자의눈]WTO 제소에 가려진 것

김우보 경제부




“이기긴 했죠. 그런데 또 언제 일이 터질지 몰라요.”

미국 상무부는 2013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한국에서 생산해 수출한 세탁기에 고율의 반덤핑·상계관세를 부과했다. 당시 미 상무부는 덤핑 마진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제로잉’이라는 비정상적 기법을 동원했다. 덤핑 마진을 계산할 때 수출가격이 내수가격보다 낮다면 그 차이를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반대의 경우엔 마이너스로 하지 않고 ‘0’으로 계산하는 식이다. 한국은 해당 판정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 2016년 승소를 따냈고 미국은 3년 뒤 결국 관세를 철회했다.


하지만 통상당국의 관계자는 미국이 WTO 판결을 의식해 관세를 철회한 것 같진 않다고 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4월 내놓은 관련 보고서를 통해 ‘삼성이 그러하듯, LG도 미국에서 세탁기를 생산하면서 밖에서 들여오는 물량을 줄일 계획’이라며 관세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미국으로 생산공장을 옮기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만큼 더는 관세를 매길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문제가 된 제로잉 기법을 그대로 둔 것을 보면 특히 그렇다. 자국산업이 피해를 입는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똑같은 방식으로 무역장벽을 세울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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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최근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개 품목 수출규제를 WTO에 제소했다. 수년 뒤 해당조치를 바로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다만 WTO를 통한 문제해결이 근본적 해법은 아니다. 일본이 내놓은 일련의 수출 규제의 뿌리에는 일본 국민들의 혐한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 WTO에서 승소한들 혐한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으면 일본은 또 다른 방식으로 공세에 나설 것이다.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라는 기조를 유지하는 한 언제든 제2의 세탁기 고율 관세가 불거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정부는 원칙을 지키려 한다. 일본을 WTO에 제소한 데 이어 조만간 백색국가(수출우대국)에서도 제외할 방침이다. 몇 달 뒤면 강제징용 관련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 기업의 자산매각이 예정돼 있다. 그 사이 일본 국민들의 혐한 감정은 더해갈 것이고 아베 정권은 이를 옆에서 부채질할 것이다. 정부가 통상 맞대응을 강조하지만 혐한 감정을 씻어낼 대응책은 보이지 않으니 안타깝다.
/ubo@sedaily.com

김우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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