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조원 대 8조원.’
세계 최대 승차공유 플랫폼 우버가 탄생한 미국의 승차공유 시장과 국내 택시 시장 규모의 차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올해 미국 승차공유 시장의 규모는 490억달러(약 58조2,000억원)에 달하며 계속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국내 모빌리티 시장의 경우 택시 시장 규모가 8조원가량으로만 추산될 뿐이다. 미국 승차공유 규모의 약 13% 수준에 불과한 셈이다. 이에 따라 택시를 넘어 국내 모빌리티 전체 시장을 확장하려면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을 막고 있는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단 업계에서는 모빌리티 플랫폼이 택시 시장을 잠식하기보다는 기존과 다른 수요층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본다.
실제로 한국교통연구원의 교통수단이용실태조사(2015년 12월)에 따르면 서울 지역의 택시수송실적(이동거리 기준)의 57.8%를 50대가 차지하고 있다. 반대로 11인승 승합차 호출서비스 타다 탑승객의 68.7%는 20~30대다.
타다의 등장 이후 개인택시의 영업수익도 늘어났다. 타다 서비스가 시작된 지난해 10월 개인택시업계 전체의 월 영업수익은 1,545억원으로 한 대당 322만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올해 5월에는 영업수익 1,668억원에 한 대당 347만원으로 증가했다. 모빌리티 플랫폼의 새로운 수요가 더해져 시장의 파이 자체가 커지게 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지난 1990년부터 우버 서비스 시작 초기인 2012년까지 유상운송을 이용하는 승객 숫자는 연 2%가량 증가해왔다. 하지만 우버와 리프트 등 승차공유 플랫폼이 확산되면서 △2016년 26억명 △2017년 33억명 △2018년 39억명 등 시장의 전체 규모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모빌리티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 운송네트워크사업자(TNC)는 택시 시장과는 별개의 시장을 두 배 이상 확대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시장조사기관 IHS오토모티브에 따르면 글로벌 차량공유 시장의 규모도 오는 2025년 1,970억달러(약 234조1,000억원)에서 2040년에는 3조3,000억달러(약 3,922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미국과 전 세계 모빌리티 시장이 성장하는 것과는 별개로 국내 모빌리티 업체들은 여전히 규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과 아산나눔재단,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함께 내놓은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누적 투자액 상위 100대 스타트업 중 53%는 진입 규제로 인해 국내에서 사업이 제한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동남아 1위 승차공유 ‘그랩’과 인도 승차공유 서비스 ‘올라’ 등은 아예 국내 사업이 ‘불가능’한 등급에 분류됐다. 만약 그랩이 국내 스타트업이었다면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 기업에 등극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미다.
규제혁신을 위해 정부에서 정보통신기술(ICT) 규제샌드박스를 추진하고 있지만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2월 첫 심의위원회가 시작된 후 모빌리티 분야에서 규제샌드박스의 문턱을 넘은 업체는 코나투스 한 곳에 불과하다. 코나투스는 자발적 택시 합승 서비스 ‘반반택시’로 재수 끝에 규제샌드박스 통과에 성공했다. 하지만 딜리버리T의 택시 기반 배송서비스와 벅시·타고솔루션즈의 대형택시·승합 렌터카를 이용한 합승 서비스, 차차크리에이션의 렌터카 기반 호출 플랫폼 등은 통과하지 못했다.
규제가 여전히 이어지자 투자 분위기까지 한풀 꺾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법적으로 그레이 영역(회색지대)이더라도 해볼 만하다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규제 때문에 투자자들이 모빌리티 업계 자체를 불안하다고 인식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카풀(승차공유) 서비스 스타트업인 풀러스의 서영우 대표도 지난달 ‘2019 벤처썸머포럼’에 참석해 “택시·카풀 태스크포스(TF)에서 카풀 운영 시간을 제한하면서 투자금 300억원을 다 날렸다”며 “재투자가 필요하다고 (투자자에게) 요청하니 규제를 풀었으면 좋겠다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현재 카풀 업계는 출퇴근 2시간씩만 운행을 허용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으로 인해 사업을 접는 스타트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모빌리티 업계 관계자는 “모든 산업이 마찬가지겠지만 모빌리티 역시 네거티브 규제 전환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