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민주당 유력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를 언급했다고 시인하면서 일명 ‘우크라이나 스캔들’ 논란이 새 국면을 맞았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바이든을 조사하라는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미 정가에 파문이 커지는 데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정면돌파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심각한 헌법적 의무 위반”이라고 비난하며 사건의 시발점이 된 내부고발자의 전체 고발문건 공개를 행정부가 계속 막는다면 사태가 “완전히 새로운 단계”에 진입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해 이번 논란을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론이 본격 재점화할지 주목된다.
2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7월25일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에 대해 “대화는 주로 당선을 축하하는 내용이었고 부패에 관한 것이었다”며 “바이든 전 부통령이나 그의 아들 같은 이들이 우크라이나에서 부패를 저지르는 것을 원하는 않는다는 내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통화에서 어떠한 잘못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며 “아름답고 따뜻하며 멋진 대화였다”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 도중 바이든 전 부통령을 언급했으며 자신이 바이든 아들의 우크라이나 사업과 관련된 부패 문제를 비판했음을 인정한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바이든 전 부통령의 불법으로 몰고 가려 하고 있다. 그는 아들과 해외사업 거래에 관해 얘기한 적이 없다고 밝힌 바이든 전 부통령을 겨냥해 “바이든은 아들과 대화한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며 “그는 우크라이나에 검찰총장을 해임하지 않으면 (10억달러) 대출보증을 해주지 않겠다고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2016년 당시 부통령이엇던 바이든이 아들이 임원으로 있던 우크라이나 가스회사가 현지 검찰의 조사를 받자 미국의 금융지원을 조건으로 검찰총장 해임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미 정가에서는 이번 사건을 제2의 ‘러시아 스캔들’로 보고 내년 대선의 향방을 가를 새로운 뇌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거론하며 강경하게 나오고 있다. 애덤 시프 미 하원 정보위원장은 이날 “이번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 임기 중 가장 큰 위반 사건”이라며 “대통령이 대선에서 상대가 될 수 있는 이에게 불리한 정보가 나오도록 외국 정상을 협박하는 동시에 군사원조를 중단하려고 했다면 탄핵이 이에 상응하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대선후보 중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도 “탄핵 절차를 당장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금까지 탄핵에 부정적이었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동료 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대통령의 심각한 헌법적 의무위반 사안에 대한 내부고발자의 의회 공개를 행정부가 계속 막는다면, ‘무법’의 심각한 새로운 장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며 강공을 예고했다. 미 정보기관감찰관실은 12일 내부고발자로부터 트럼프 대통령과 외국 정상의 부적절한 통화에 대한 고발을 접수해 조지프 맥과이어 국가정보국(DNI) 국장대행에게 제출했으나, 맥과이어 국장대행은 일주일 뒤 의회에 이를 통보해야 하는 의무를 따르지 않았다.
이번 사태의 1차 고비는 펠로시 하원의장이 내부고발자 정보공개의 데드라인으로 정한 26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맥과이어 국장대행은 이날 하원 정보위 청문회에 출석한다. NYT는 “펠로시 하원의장은 탄핵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번 메시지는 그 가능성을 암시하는 듯이 보인다”며 “정부가 26일까지 내부고발자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의회의 심각한 반발에 직면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논란이 커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문제가 된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통화 녹취록을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