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休]비움, 사사로운 상념을…채움, 성리학의 가르침

[경북 영주 순흥면 소수서원]

세계유산 등재…한국서원 9곳 중 한 곳

약 350년간 4,000여명의 유생 거쳐가

툇마루 가장자리 턱·한자 낮은 방에는

스승 그림자 밟을까…배움의 겸손 담겨

부석사 방면 조금 걷다보면 선비촌이

해품달 등 촬영지로 유명 셀카 명소로

경북 영주 순흥면에 위치한 조선 최초의 사액 서원인 소수서원 전경.경북 영주 순흥면에 위치한 조선 최초의 사액 서원인 소수서원 전경.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 7월 ‘한국의 서원’ 9곳을 “오늘날까지 교육과 관습의 형태로 이어져 오는 한국 성리학의 증거”라고 평가하며 세계유산목록에 올리기로 확정했다. 한국 최초의 서원인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을 비롯해 경남 함양의 남계서원, 경북 경주의 옥산서원,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 전남 장성의 필암서원, 대구 달성의 도동서원,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 전북 정읍의 무성서원, 충남 논산의 돈암서원 등이다. 서원은 조선 시대 대표적인 사설 교육기관으로 학교·사당·도서관 등의 기능을 담당했다. 향교가 과거 급제 등 관료 양성을 목표로 했다면 서원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학문을 다지던 곳이었다.

이 가운데 경북 영주 순흥면 소백로에 가면 울창한 소나무 숲과 죽계천에 둘러싸인 소수서원을 만날 수 있다. 1543년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국내 첫 주자학자인 안향 선생을 기려 ‘백운동(白雲洞)서원’으로 세웠는데 1550년 퇴계 이황이 조정에 건의해 소수서원이란 사액을 받았다. 책·토지·노비 등을 지원받은 서원은 1888년 최종 입원생을 받을 때까지 4,000여명에 달하는 제자를 양성했다고 한다. 한 해 많아야 30명을 받았다고 하니 서원에 입학한 유생은 요즘 원하는 대학에 입학한 수험생처럼 그 기쁨이 남달랐을 것이다.

유생들이 모여 강의를 듣던 강학당은 툇마루 끝부분이 살짝 솟아 있다.유생들이 모여 강의를 듣던 강학당은 툇마루 끝부분이 살짝 솟아 있다.


성리학의 기본 가르침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다. ‘어질고, 의롭고, 예의 있고, 지혜로우며,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소수서원 건축물 곳곳에서 이를 지키고자 한 유생들의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다. 정문인 지도문(志道門)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강의를 듣던 강학당(講學堂)이 자리하고 있는데 사방으로 설치된 툇마루 가장자리에는 높이 약 7㎝ 턱이 솟아 있다. 유생은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에게 예를 다하기 위해 뒷걸음으로 방을 나와 발끝이 턱에 닿으면 그제야 몸을 돌릴 수 있었다고 한다. 지나친 듯 보이지만 감사함을 잃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

교사들의 집무실 겸 숙소로 활용된 직방재(왼쪽)와 일신재는 한 건물로 이어져 있다.교사들의 집무실 겸 숙소로 활용된 직방재(왼쪽)와 일신재는 한 건물로 이어져 있다.


배움 앞에 겸손은 강학당 뒤에 자리한 교사들의 집무실 겸 숙소였던 일신재(日新齋)와 직방재(直方齋), 유생들의 기숙사였던 학구재(學求齋)와 지락재(至樂齋)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학구재와 지락재는 일신재와 직방재 뒤로 두 칸 정도 뒤에 자리 잡고 있다. 허태자 소수서원 문화관광 해설사는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기 위함이며, 방 높이도 한자(一尺) 낮게 만들어 겸손을 표했다”고 설명한다.


소수서원에 머물기 위해서는 스승에 대한 존경심 이상으로 실력과 배움이 뒷받침돼야 했다. 통(通), 약(略), 조(粗), 불(不)로 성적을 매겨 불이 세 개 이상이면 퇴학을 권고했을 정도였다. ‘무너진 교학을 다시 닦는’ 소수(紹修)의 정신은 무쇠장이 배순을 제자로 받을 만큼 학문에 열을 올리는 이에게는 열려 있지만 스스로 공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매몰찼던 것으로 보인다. 백운교를 건너면 소수서원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와 물품이 전시된 소수박물관이 있는데 그중에는 유생의 성적을 매긴 종이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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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 죽계천을 건너지 않고 내려오면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는 정자 ‘취한대’를 만날 수 있다.박물관에서 죽계천을 건너지 않고 내려오면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는 정자 ‘취한대’를 만날 수 있다.


박물관까지 관람하고 출구를 향해 죽계천 건너 마련된 산책로를 걷다 보면 정자 ‘취한대’가 있다. 이황이 직접 ‘연화산의 푸른 기운과 죽계의 맑고 시원한 물빛에 취하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이름을 지을 만큼 운치 있는 정경을 자랑한다. 조선 시대의 거유(巨儒)라도 온종일 학업만 매진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가끔은 서원 밖으로 나와 취한대에서 자연에 취해 머리를 식혔을 대유학자를 생각하며 명상에 젖으면 사사로운 상념이 사라지는 듯하다. 죽계천 너머 보이는 서원 경관은 또 다른 멋을 뽐낸다.

영주까지 가서 소수서원만 보고 올라오기는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든다. 부석사 방면으로 조금만 걸어가 선비촌을 방문하는 것도 좋은 선택지다. 전통한옥마을을 재현한 이곳은 낮은 담장 사이로 기와집과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향토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드라마 ‘추노’ ‘각시탈’ ‘신입사관 구해령’ ‘해를 품은 달’ 등 각종 사극 촬영지로 활용된 만큼 예쁜 사진을 남기기에 좋다. 고택에서 숙박할 수 있으며 다도 체험 등 전통문화를 통해 선조들의 삶을 느껴볼 수 있다.
/글·사진(영주)=한민구기자 1min9@sedaily.com

한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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