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21일 오후 광주의 1913송정역시장. 호남의 심장 광주 한복판에 낯선 경상도 사투리가 들렸다. 대구 토박이 정영철(42) 씨는 광주 1913송정역시장 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탄 ‘또아식빵’에서 가족들과 빵을 고르고 있었다. 정 씨는 “광주에 가족들과 여행 온 김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유명한 시장에 들른 것”이라며 “인터넷에서 유명한 또아식빵을 실제로 보니 신기하다”고 말했다. 둘째 아이는 벌써 또아식빵 옆에 자리한 양갱 가게 ‘갱소년’으로 뛰어 들어갔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은 독특한 콘셉트의 가게들을 신기한 듯 구경하고 있었다. 특히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한 손에 큰 캐리어를 끌고 뒤에는 기타를 매고 있던 서인주(25) 씨는 “광주 친구들과 공연을 위해서 광주에 왔다가 서울행 KTX를 타고 집에 가기 전에 시간이 남아 시장에 들렀다”며 “영광굴비가 주렁주렁 걸려있는 고풍스러운 가게 근처 목욕탕을 개조한 맥주집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며 웃어 보였다. 실제로 광주를 오가는 사람들은 KTX 광주송정역에 도착한 후 한 번, 출발하기 전에 또 한 번 1913송정역시장에 들러 먹거리와 볼거리를 실컷 즐기는 모습이었다.
이름 그대로 1913년에 태어난 광주 1913송정역시장은 이제 100살을 훌쩍 넘은 대표적인 전통 시장이다. KTX가 들어서고 중간에 큰 도로가 나 시장은 총 길이 150m 남짓한 ‘미니 시장’이 됐다. 하지만 상인들과 지자체의 노력 덕분에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섞인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특히 청년 상인들이 대거 둥지를 트면서 기존 상인들과 어우러져 활력이 넘친다. 이곳에 자리잡은 가공식품 전문점은 국내 판매와 해외 수출로 연 매출 20억원을 거두는 강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태형식품은 30년 역사의 대표적인 토박이 상점이다. 배추, 고추, 양파, 호박, 대파 등 싱싱한 채소들이 좌판에 깔려 있는 모양새는 여느 시장과 다를 바 없지만 불과 몇 년 전 만에도 시장을 찾는 이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활력을 잃기도 했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자 모밀을 파는 ‘산수옥모밀’에서 구수한 충남 사투리가 들려왔다. 비가 많이 내려 영업을 일찍 마치려고 한다는 사수옥모밀 사장의 말에 충남에서 왔다는 관광객은 “그렇담 담에 올게유”라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서성열 산수옥모밀 사장은 “이곳을 찾는 사람 절반이 외지 분들”이라며 “KTX역이 있기도 하고 근처에 공단도 있어 외국인 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시장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우산을 받쳐 들고 줄을 길게 늘어선 가게가 눈에 띄었다. 흑백사진만 찍어준다는 사진점으로, 추억을 남기고 싶은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송정역시장의 대표적인 명소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1913송정역시장에서 시작해 KTX를 타고 전국으로 또 세계로 나간 ‘핫플레이스’ 가게도 있다. 송정역시장에서도 가장 끝자리에 위치한 ‘느린먹거리’는 김부각을 만들어 판다. 전통 주전부리인 김부각을 고급 간식으로 바꿔 전국적인 히트를 쳤다. 근처 상인은 “지난 추석땐 밀려드는 김부각 주문에 공장을 밤새 돌려도 물건을 댈 수 없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1913 송정역시장은 오는 28일 송정연합시장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단과 청년몰 사업단, 상인들이 힘을 모아 ‘1CM 맥주축제’와 재즈 공연 등 다양한 문화 축제를 연다. ‘1913 1CM 맥주축제’는 시장 내 상가에서 물건을 구매한 관광객에게 무료로 맥주 코인을 제공하는 것으로, 맥주빨리마시기 등 이벤트도 열린다. 같은 날 열리는 가을밤 문화공연은 9월 가을밤의 정취를 느끼며 맥주를 즐길 수 있는 재즈공연이다. 다음 달에는 핼러윈 축제도 열릴 예정이다.
조봉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이사장은 “작지만 가치 있는 소상공인제품과 전통시장 이용 촉진을 위한 ‘가치삽시다!’ 캠페인 문화가 전 국민에게 확산될 수 있도록 이번 전통시장 가을축제기간 동안 많은 분들이 전통시장을 찾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광주=박호현기자 greenligh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