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늘의 경제소사] 영동개발진흥 사건

1983년 금융비리 시리즈




1983년 9월26일 오전10시30분 서울 중구 삼각동 조흥은행 본점. 이헌승 행장이 긴급 기자회견에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요지는 어음 부정 발급. 부동산 개발 및 건설 업체인 영동개발진흥이 은행 직원들을 매수,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어음 1,670억원을 부정 지급 보증받는 비리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조흥은행은 영동개발진흥 관련자 3명을 검찰에 고발하는 한편 관련 직원 10명에 대해 파면 조치를 내렸다. 이 행장은 “비리에 단호하게 대처했다”며 “보름간 철저하게 조사했다”고 밝혔으나 과연 그랬을까.


검찰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도피한 영동개발진흥의 대주주 모자(母子)를 조흥은행 자체 조사 발표 이튿날 합천 해인사에서 찾아내 구속했다. 구속자도 점점 늘어나 27명에 이르렀다. 10월15일 검찰은 이 행장에게도 오랏줄을 던졌다. 뇌물 2억원을 받은 혐의다. 영동개발진흥은 일찌감치 부동산 개발 투자에 나섰던 신흥기업. 강남과 가락동·방이동 일대에 수천 세대의 아파트를 건설해 이름값을 높였다. 검찰 조사 결과 이들은 1980년 초부터 1983년 9월까지 부정 발행한 1,768억원의 어음을 조흥은행 중앙지점장 등의 부정 날인으로 지급 보증받아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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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들은 혐의를 부인하며 끝까지 상소했으나 대법원은 1984년 11월17일 검찰의 공소장을 거의 대부분 인정하는 확정판결을 내렸다. 주범인 대주주 이복례(당시 65세) 징역 15년, 아들 곽근배(44) 징역 4년형. 추징금 2억원과 징역 4년형을 받은 이 행장은 실의의 세월을 보내다 1990년 63세 나이로 죽었다. 대법원은 범행이 극히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장기간 이뤄졌으며 배임수재, 배임증재, 업무상 배임 및 방조, 유가증권 위조 및 행사, 조세범처벌법·부정수표단속법·방위세법 위반을 저질렀다고 판단, 관련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중형을 때렸다. 무려 57명이 처벌받았다.

주목할 대목은 연속적인 대형 금융비리다. 단군 이래 최대 사기라던 장명자·이철희 사건을 비롯해 명성 사건 등이 꼬리를 물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권력과 유착. 군부 독재 핵심부가 쥐락펴락하던 은행권 인사와 대규모 대출은 비리로 이어졌다. 영동개발진흥의 대주주도 여관을 운영하다 음식 솜씨에 매료된 정치군인들의 집권 이후 사업을 펼쳤다. 두 번째 특징은 아직도 떵떵거리고 산다는 점이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여전히 흥하는 풍토,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뿌리부터 갉아먹던 행태가 이젠 사라졌을까.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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