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로터리] 내가 남긴 발자국, 누군가에겐 이정표

조종태 광주고검 차장검사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존경받는 ‘어른’이 계시지 않는다는 아쉬움 섞인 얘기들이 많이 들린다. 예전에 우리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 스님 같은 분들이 국민들에게 혜안을 주시곤 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그렇지만 학교와 직장에서도 존경받는 사람을 찾기 쉽지 않다. 내가 몸담고 있는 검찰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요즘은 선배들이 존경받는 것은 고사하고 혹여나 갑질 논란에 휩싸이지 않을까 걱정부터 해야 하는 현실이다.


나는 20여년간 검사로 살면서 존경할 만한 선배들을 많이 만났다. 일선 검찰청에서 만났던 상사는 ‘내가 부장이 되면 과연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고 느낄 정도로 닮고 싶은 분이었다.

이제는 검찰에 선배보다 후배가 훨씬 많다. 검사 2,100여명 중 앞에서부터 세는 게 훨씬 쉬운 나이가 됐다. 그동안 부장도 하고 지청장도 거쳤다. 어느새 후배들이 어려워하는 자리에 와있는 지금, 나는 내가 존경하고 닮고 싶어 했던 분들의 반이라도 따라 하고 있는지 걱정이 된다.

특히 요즘은 워낙 세대 간의 생각 차이가 크고, 법조환경도 많이 달라져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후배가 바라는 선배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직장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는 ‘똑게’라는 얘기를 들었다. 똑똑하지만 게으른 선배는 능력도 있으면서 자신의 일을 분배해 후배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다고 한다. 반면 후배들이 가장 싫어하는 선배는 ‘멍부(멍청하고 부지런함)’인데 이런 사람은 능력도 없으면서 성과나 일 욕심만 많아 후배들에게 불필요한 일을 시켜 피곤하게만 한단다.

나는 후배들에게 똑게와 멍부의 어디쯤에 있을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검사들은 어떤 선배를 좋아하고 닮고 싶어 할까. 다행히 최근 한 후배로부터, 후배들이 바라는 선배 검사의 모습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일선 형사부 등에서 생활형 검사로 살아가는 후배들은 큰 것을 바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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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해달라, 애정을 가져달라, 롤모델이 돼달라.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와 편하게 얘기해주고 후배의 말에 귀 기울이며, 예전에 내가 느꼈던 그 시절의 불편함과 수고를 후배들이 겪지 않도록 측은지심과 애정을 가지고 지도하고, 후배들이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여기도록 멋짐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멋짐’이란 검사로서의 보람과 의미를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동안 언론과 우리 사회는 거대한 부정부패 사건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며 검찰의 중립성과 수사의 독립성을 지켜낸 검찰총장 출신들을 존경받는 검사로 언급했다.

물론 그분들에게는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지금의 검사들에게서 너무 멀다. 하루하루 지친 몸과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검사들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끊임없이 밀려오는 사건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그들이 아닌가.

그런 검사들에게 선배는 친구이자 상담가이며, 동시에 검사로서의 보람과 의미를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눈 내리는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러이 발걸음을 내딛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뒤따라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서산대사의 시 ‘답설야중거’다. 선배의 길은 그런 길이다. 삼가고 또 삼가야 하는 길.

조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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