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감사원 "公기관 정규직화 부적정"] '文 1호공약' 조급증에 합리·공정성 뒷전..."정책 다시 짜야"

세밀한 설계없이 밀어붙이다 노노·노사 갈등 부채질

감사원, 채용비리 의혹 서울교통공사 사장 해임 권고

서울시 "감사결과 시대착오...정규직화 계속 추진할 것"

지난해 12월31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광장에서 열린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촉구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부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해 12월31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광장에서 열린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촉구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부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국제공항공사와 서울교통공사 등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이 추진되는 대부분의 공기업에서 터져 나오는 경영 합리성, 기존 근로자와의 형평성,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의 공정성 문제를 총망라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의 모델이 됐던 서울교통공사에서는 정책이 추진된 지난해부터 비용 부담과 청년 근로자들의 형평성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한국도로공사의 톨게이트 수납원 직접고용 문제도 사용자의 경영 합리화와 노조의 근로조건 개선 요구가 부딪히는 양상으로 감사원의 지적과 동떨어져 있다고 보기 힘들다. 다만 정부와 서울시 모두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위험의 외주화’를 해결하기 위해 정규직화 정책을 수정할 의사는 없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노동정책의 디테일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30일 감사원의 ‘비정규직 채용 및 정규직 전환 등 관리 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감사원은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화 정책에 대해 공정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인천공항공사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3일 만인 지난 2017년 5월12일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에 따라 공항공사에 근무하는 협력사 직원 전원을 정규직(무기계약직)화하기로 했으며 이후 52개 협력사 직원 9,871명에 대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감사원은 협력사 취업→무기계약직 전환이 기정사실인 상황에서 새로운 협력사 취업에 공정성을 기해야 함에도 필기시험 없이 서류심사로 면접 대상자를 선정하고 사업소 현장소장 등이 면접을 실시하는 등 절차가 간소해 절차적·내용적으로 공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전환 채용 대상자의 경우 공개채용에 응시하는 일반 국민보다 유리함에도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서울교통공사에서도 유사하게 지적됐다. 서울교통공사의 전신인 도시철도공사와 서울메트로는 과거 직원의 추천을 받은 친인척 등을 면접 등 간이 절차만 거쳐 기간제로 채용하거나 사망 직원의 유가족을 아무런 평가 없이 기간제로 받아들였다. 감사원은 애초 기간제 채용이 불공정했다면 이들을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기존 직원과의 ‘형평성’ 문제도 거론됐다. 서울시는 2007년부터 기간제 비정규직 직원의 무기계약직화를 추진한 후 2016년 5월 구의역 사고 이후 무기계약직을 정규직화하는 방침을 세워 2017년 8월 산하기관에 전달했으며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시한(2018년 1월)을 다소 넘긴 2018년 3월 전환을 완료했다. 이들은 기존 공채 신입 급수인 7급의 한 단계 아래인 7급보(근속기간 3년 미만)로 임용됐고 이후 7급 승급시험을 치렀다. 문제는 이 승급시험의 난이도가 고졸 수준으로 94%가 합격했다는 데 있다. 당시 시험 과정에서 교통공사 청년 근로자들이 시험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등 이 문제는 노사 및 노노 갈등으로 치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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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은 ‘경영 합리성’에 대한 문제도 지적했다. 서울교통공사의 영업적자는 지난해와 재작년 모두 5,000억원을 넘겼다. 감사원은 “일반직 전환비용을 공사의 자체 재원으로 충당하도록 하면서도 실제 자체 재원으로 충당 가능한지 검토하지 않아 일반직(정규직) 전환 업무를 무리하게 추진하도록 하는 원인을 제공했다”고 판단했다. 감사원은 서울시의 30년간 전환비용 추정치(2018년 기준 27억8,000만원) 830억원도 승급과 호봉 상승에 따라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수차례 지적했다.



서울시는 이번 감사 결과가 시대착오적이라고 반발했다. 강태웅 서울시 행정1부시장은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보다 엄격한 실측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인데 서울시는 이미 무기계약직 전환 과정에서 검증을 거쳤다”며 “노동 철학과 노동권의 존중에 대해 견해 차이가 난 것이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시대적·역사적 과제에 대한 이해부족”이라고도 말했다. 서울시는 김태호 서울교통공사 사장의 해임을 권고한 감사원에 재감사를 요구할 계획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은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이 옳더라도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는 상황에서 더욱 세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규직 전환은 세밀한 설계도를 바탕으로 했었어야 했는데 설계도 없는 상황에서 정책을 시행하면서 문제점을 개선해나가려고 하니 노사·노노 간 불필요한 갈등만 유발하고 있다”며 “형식적으로 전환에 방점만 두고 공정성을 과소평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종선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부소장도 “정규직 전환 방향 설정은 맞다”면서도 “노조는 기획재정부에 추가 인력 재원을 요구하고 사측은 정상화하고 싶지만 예산권이 있는 기재부의 눈치를 보니 인건비 등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함께 감사 대상에 오른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는 공사 직원이 비정규직 면접위원으로 참여해 친동생에게 최고점을 부여해 2017년 4월 채용한 것으로 확인됐고 한전KPS에서도 비정규직 채용 시 채용공고상 자격요건을 미충족(4명)하거나 허위 경력증명서를 제출(1명)한 사람을 부당하게 채용했다. 다만 2016년 5월 구의역 김군 사망사고 이후 그해 8월 서울시가 산하기관 무기계약직 전원의 정규직화를 추진하자 실제 전환 시점인 2018년 3월까지 민주노총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등이 조직적으로 친인척을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했을 것이라는 의혹은 사실무근으로 확인됐다. /변재현·정영현·박준호기자 humbleness@sedaily.com

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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