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513조5,000억원으로 2019년 대비 9.3% 증가했다. 그중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22조 3,000억원으로 올해 19조8,000억원보다 약 12.9% 늘었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 국민들의 생활환경이 개선된다고 직접 체감하기에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올해 1월부터 정부에서 잇달아 발표한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예비타당성 면제 사업, 국민 생활 편의성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기반시설 투자, 그리고 노후화된 하수관로 정비계획 등 정책들을 고려하면 SOC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가 간 비교에서 한국의 인프라 순위가 국가경쟁력 순위보다 다소 높게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인프라 충족도는 예상보다 낮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체감하는 인프라는 통학과 출퇴근, 전기와 통신 두절 시 복구, 주변에 활용 가능한 의료기관이나 문화시설 등이다. 고속도로나 공항·발전소 등은 산업의 대동맥, 즉 생활과 산업활동을 지원하는 국가 인프라다.
국민이 생활에서 체감하는 인프라는 고속도로보다 시내 도로, 발전소보다 전기, 쓰레기 매립장보다 쓰레기 수거 등이다.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인프라의 수요는 아직도 높다. 최근 서울대가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인프라 충족도를 조사한 결과 도시교통에 대한 충족도는 ‘B’학점이지만 생활 인프라는 ‘C’학점에 그쳤다.
서울이 이 정도 수준이면 수도권과 지방은 더 취약할 것이다. 한 예로 발밑에 있는 지하매설 관로의 노후화는 예상보다 심각하다.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하수도 3만4,300㎞(23%), 상수도 2만3,900㎞(25.3%)의 사용기간이 30년을 넘어섰다. 노후화됐다는 의미다. 상하수도 관로 손상으로 발생한 도로 함몰사고의 비중은 무려 51.4%에 달한다. 30년 이상 된 하수도 교체에만 34조원 넘게 소요된다. 상수도까지 합하면 60조원이 넘는다. 정부도 이런 사실을 알기 때문에 지하매설물, 노후 철도 등 교통시설 개선 등에 32조원을 투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정책 기조를 과거 국가 경제를 뒷받침했던 도로·철도 등 중대형 SOC 건설에서 국민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향후 48조원을 생활형 SOC에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이런 인식과 정책 전환이 내년 SOC 예산을 증가한 주요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필자는 부족한 재정을 고려해 건설보다는 생활 인프라와 지하 관로, 안전 등에 우선 투자해 질적으로 투자 분야를 바꿀 문제지, 경제기반형 인프라가 갖춰졌다고 인프라 예산을 줄일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인구가 도시로 몰리고 있다. 그 이유는 생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일자리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스위스는 국가 인프라 충족도 또한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스는 교통과 생활 인프라에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스위스는 국토 면적의 60%가 산지이고 인구의 39%가 산지에 산다. 우리는 산지 면적이 70%지만 거주 인구 비중은 약 9%에 불과하다. 스위스의 산지 비중이 우리보다 낮음에도 거주 비중이 4배나 높은 이유는 생활 인프라가 우리보다 훨씬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스위스가 생활 인프라에 지속적으로 투자한 이유는 이로 인해 국민과 국가가 얻을 수 있는 혜택이 그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내년 SOC 예산 22조원으로는 국민들이 체감할 만큼 생활 인프라 수요를 충분히 만족시키기 어렵다. 현세대가 누리고 간 빚을 후대로 떠넘기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세대에서 지속적으로 사회기반시설에 적정한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