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한 ‘복면금지법’이 시행된 후 홍콩 시위대의 반(反)중국 정서가 최고조에 달했다. 중국 정부가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임시정부’를 세우자는 주장이 제기되는가 하면 중국계 기업이나 중국인을 타깃으로 한 폭력도 거세지고 있다. 중국계 은행과 점포가 시위대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되면서 중국 본토의 반홍콩 감정도 악화하자 중국 정부의 무력진압이 앞당겨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빈과일보 등에 따르면 홍콩 정부가 52년 만에 ‘긴급정황규례조례(긴급법)’ 발동을 통해 복면금지법을 시행한 5일부터 홍콩 전역으로 시위가 확산되고 폭력의 강도도 세졌다. 징역형까지 위협하며 마스크 사용을 금지한 복면금지법 시행에 아랑곳없이 시위대는 이날도 마스크를 쓴 채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특히 시위대는 반중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툰먼·성수이·틴수이와이 등 시내 곳곳에서 중국계 은행과 점포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이들은 중국은행·중국건설은행·중신은행 등의 지점에 들어가 현금자동입출금기(ATM)와 폐쇄회로(CC)TV 등을 부수고 유리문과 벽에는 중국 정부를 비난하는 낙서를 적어놓았다. 중국 이동통신사인 차이나모바일 대리점도 시위대의 공격으로 기물 등이 훼손됐으며 중국인이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제과점·식당·약국 등도 타깃이 됐다. 이날 저녁에는 일부 시위대가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중국군) 건물까지 접근하자 중국군 경비병이 노란색 깃발을 들어 올려 시위대에게 경고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홍콩 시위대는 람 행정장관이 중국 정부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보고 복면금지법 시행 등 잇따른 강경책의 배후에는 중국 중앙정부가 있다고 주장했다. 4일 집회에서 시위대 수천명이 미국독립선언을 일부 차용한 ‘홍콩 임시정부 선언’을 낭독하는 일도 있었다. 이 선언문은 현재의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를 더는 신뢰하지 않으며 대신 홍콩인들에게 자유와 민주·인권을 안겨줄 임시정부를 설립한다고 설명했다. 이 선언문의 작성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시위는 4일 저녁 14세 소년이 또 경찰의 실탄에 맞으면서 한층 격렬해졌다. 이 소년은 홍콩 위엔랑 지역에서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쏜 총에 허벅지를 맞고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1일 중국 건국 70주년 ‘국경절’에 경찰의 조준사격으로 18세 고교생이 중상을 입은 지 사흘 만에 추가 희생자가 나온 것이다 .
시위의 영향으로 주말 홍콩의 지하철은 모두 멈춰 섰으며 중심가의 쇼핑몰과 일반 상점들도 대거 문을 닫았다. 아시아의 금융중심지인 홍콩이 한꺼번에 정지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람 행정장관은 5일 동영상 메시지에서 “오늘 홍콩은 절반이 마비됐다”면서 홍콩의 공공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밝혀 강경책을 지속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홍콩에서 반중국 정서가 고조되면서 중국 본토의 분위기도 경직되고 있다. 특히 홍콩 정부가 복면금지법을 예고한 4일 본토 출신 중국인이 시위대에게 구타당한 영상이 온라인에 유포되면서 반발 강도는 심해졌다. 동영상에는 중국 표준어인 푸퉁화(보통화)를 쓰는 JP모건체이스 직원이 홍콩 본사 앞에서 시위대와 언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시위대가 “본토로 돌아가라”고 외치자 이 직원은 “우리는 모두 중국인”이라고 말했는데 이후 그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한 시위자가 그의 얼굴 등을 수차례 가격했다.
이에 대해 중국 관영매체들은 일제히 홍콩 시위대의 폭력행위를 비난하면서 복면금지법의 정당성을 선전하고 나섰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홍콩 경찰이 시위를 관리하지 못할 경우 중국군이 직접 나설 수 있다”며 “중국이 ‘명분 쌓기’에 들어간 듯하다”고 말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